목회칼럼
20년을 하고도 좀 더 시간을 갖는 이유
성탄 전날인 12월 24일이면 제가 담임목사로 부임한 지 만 20년이 됩니다. 1993년 5월에 교육전도사로 부임한 것부터 치면, 30년이 넘는 시간을 다운공동체와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짧지 않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오래된 만큼 신뢰가 간다는 말도 되지만, 이만하면 되었다는 의미도 될 수 있습니다. 제게는 후자가 마음에 걸립니다. 아마도 인터넷만 열면 ‘000 나가’라는 시대 정신과 겹쳐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칼럼 제목을 ‘20년을 하고도 좀 더 시간을 갖는 이유’라고 잡았습니다. 사실 이 제목의 칼럼은 몇 달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발표 날짜는 22일 주간이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간은 주님이 오신 성탄절 주간이라 자칫 예수님보다 제 이야기가 시선을 끌겠다 싶어 이번 주 칼럼으로 나눕니다.
대학 때 이야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 무엇을 배웠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자기 삶의 지표가 될만한 선생님이나 말씀이 기억날 때가 있습니다. 7,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영향을 받았을 두 분의 철학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 분은 지금도 활동하시는 김형석 교수님이고 다른 한 분은 고인이 된 안병욱 교수님입니다. 두 분은 친구이고, 두 분을 기념하는 양구인문학박물관이 있습니다.
저는 안병욱 교수님의 은퇴 전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들은 제자입니다. 제가 1학년 입학하던 해에, 공식적으로는 대학 강단에서는 은퇴하셨습니다. 그때 그분의 강의에서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두 가지가 있다면, “학문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솔직해야 한다”는 것과 “무슨 일을 하든지 10년은 치열하게 해라, 그러면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것을 배웠을 텐데도 이 말씀이 제게 각인된 듯, 이후로 무슨 일을 하든지 정직하게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2002년도에 다운공동체 2대 담임목사님으로부터 3대 담임목사 청빙을 메일로 받았고, 이후에 캐나다로 당시 윤장로님이 오셨는데 기억나는 장면은 장로님과 단둘이 집 밖에 나가서 나눈 대화입니다. 그날 밤 제가 살던 시골동네인 '애보츠포드'의 밤하늘의 별들이 평상시보다 더 아름다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제 기억에 남은 것이니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교회를 부흥시켜 달라”, “원로가 되기까지 오랫동안 사역하는 목사가 되어 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다운교회에 필요한 두 가지였다고 봅니다. 그래서 부흥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20년은 있어야겠구나 하는 결심을 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두 가지 약속을 지켰는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부흥이라는 것이 단순히 숫자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미흡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영향력과 본질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20년 전과는 분명 부흥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임기도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20년이야 버티겠지 했는데, 한 교회에서 20년을 사역한다는 것이 단순히 목회자가 마음 먹는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교인들이 원한다고 되는 일도 아닌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있어야 하고, 교인들도 하나 되는 성숙함이 있어야 하고, 목사도 교인들은 싫다는데 하나님 뜻이라고 우기는 욕심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고, 갈등 앞에서는 다 내려놓고 떠나고 싶은 유혹과 그로 인한 소문도 이겨낼 때만이 가능한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 20년이면 원로자격을 주는지 알것 같습니다. ^^;
사실 개인적으로 20년을 맞으면서 스스로 자축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같이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은 기질의 사람이 조직체에 매여 20년을 리더로 있었다는 것이 저는 기적이고 은혜라고 봅니다. ^^; 그렇다면, 지금이 적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손뼉 칠 때 떠나는 것이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리더인 것이 불편한 분들이 없다면 빈말입니다. 그분들은 새로운 목사가 오면 다시 힘을 낼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을 수없이 해 봅니다. 더 인간적으로는 지금이, 제 경험을 필요로 하는 교회에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리고 이런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설교와 함께 은퇴한다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하는 상상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에는 제가 기준이 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몇년 전, 최영기 목사님께 이제 그만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제 메일에, “내가 박 목사에게 묻고 싶습니다. 교회 주인이 예수님이십니까? 관계가 힘들어서 교회를 사임하거나 새로 개척을 할 생각을 했다고 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떠나라고 하면 박 목사는 아무리 아쉬워도 다운공동체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러라고 하지 않으셨는데, 스쳐 가는 생각이라 할지라도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한다는 것은, 박 목사가 예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라고 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만남에서, 두 가지 경우라면 떠나라, ‘교인의 절반 이상이 반대한다든지, 아니면 그 공동체에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 즉 할 일을 다 해서 더 이상 할 일 없다면 떠나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교인이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지는 신임투표를 해보면 알겠지만, 이미 제 목회에서 2번이나 했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제가 이 교회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다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는 제가 아직 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목회는 이제는 제가 아니고 누가 와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개척될 때부터, 그리고 제가 부임할 때부터, 그리고 가정교회를 하면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같은 것이 있다면,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그중의 하나는 건강한 분립개척입니다. 구영리로 들어오면서는 한 공간 안에서의 여러 공동체에 대한 사명입니다. 당회에서도 수차례 다루었고, 코로나 상황에서 어수선했지만, 공동의회에서도 다루었습니다. 이후 저는 한국교회를 보면서, 더욱 이런 방향을 나아가는 것이 한국교회에 필요함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 분립만이 능사가 아님도 압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공동체의 성숙이 필요합니다.
그 의미를 지금 여기서 다룰 수는 없지만, 제가 20년을 하고도 좀 더 담임목사로서의 시간을 갖는 이유는 바로 건강한 계승과 더불어 이 일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공동체나 우리 다음 세대나 그리고 한국교회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것이 성육신과 성만찬 속에 들어있는 주님의 뜻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 사명을 위해 제가 조금 더 담임목사로 머무는 것을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30대에 다운공동체 교회에 왔는데 이제 50대를 넘어 가는 시간을 거치면서 목사님의 20년을 하고도 좀 더 시간을 갖는 이유가 정말 마음에 동의가 됩니다. 저도 앞으로 10년 어떻게 다운공동체 교회에서 아름답게 사역을 마무리 하고 제 인생의 또 다른 후반전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더욱 더 치열하게 사역에 몸부림 쳐 보겠습니다. 삼국지의 황충처럼 청소년 사역에서 노익장(?)의 위엄을 한번 펼쳐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