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기독교는 위기의 종교인가?
기독교계에서 요즈음 하고 있는 걱정 중에 하나는 기독교인이 줄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때 기독교가 융성했던 유럽은 거의 다 믿음을 버렸고, 그래서 텅텅 빈 예배당은 예전의 영화를 보여줄 뿐이며 지금은 결혼식 같은 커뮤니티 서비스로만 사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유럽의 전철을 미국과 한국도 따르고 있다고 걱정들을 합니다. 현실을 보면 그렇게 걱정하는 것이 무리는 아닌듯합니다. 한국도 큰 예배당들이 비어가고 있고, 무엇보다도 근심스러운 것은 주일학교에 어린이가 줄고 있고, 특별히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으니 위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총체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세계 어디를 보아도 부흥하는 교회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팀 켈러 목사님은 반기독교 정서가 팽배하고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의 기치아래 동성애와 마약이 판을 치고, 돈이 우상이 되어있는 멘하탄 한복판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대형교회를 이루어냈습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루이14세 이후 프랑스에서는 개신교가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 프랑스에서도 요즈음은 개신교가 급속도로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매 주일 3000명 이상 모이는 개신 교회도 파리에 있습니다. 물론 많은 경우는 오순절 계열이 주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남미도 아프리카도 부흥하는 교회는 여기저기에 많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교회에 실망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여전히 교회를 찾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한 때 과학이 발달하면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고 기독교가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얘기가 팽배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절대적인 위기 상태에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지만, 또 한 가지는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을 떠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인간에게는 파괴가 뒤따르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간은 다시 하나님을 찾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교회들이 젊은이들이 떠나는 이유를 잘 파악하고 비호감을 주는 부분을 고쳐나가면 미래는 여전히 밝을 텐데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들이 여전히 옛날의 영화만 생각하고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지 않나 싶습니다.
교회가 젊은 사람들에게 비호감을 주는 첫 번째는 무조건 믿으라는 식의 강요입니다. 70년대 우리나라가 어렵던 시절에는 뭔가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에 무조건 믿으라고 해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반대로 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가지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지금도 믿으면 좋다는 식의 설교가 대부분인 것을 발견합니다. 따라서 젊은 사람들이 안 믿겠다고 하는 이유를 찾아서 같이 고민하고 그 부분을 해소해 주는 설교와 가르침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젊은 사람들에게 비호감을 주는 또 다른 한 가지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권위의식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가지고 있는 권위의식, 교회 내에서 목사님들이, 장로님들이, 어른들이 보이는 권위의식은 젊은 사람들을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권위의식은 행동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권위의식은 생각이기 때문에 설교에서, 행정에서, 교회 구석구석에서 발견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의 사활을 걸고 권위의식을 없애고 젊은이들을 품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기를 펴도록 해 주어야 하고, 그들이 교회의 주역이 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젊은 사람들에게 비호감을 주는 또 한 가지는 투명성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금전적인 부분에 투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의미 있는 일을 찾지 못하고 목적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그렇게 본다면 가정교회는 그 문제들의 많은 부분에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삶은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대신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합니다. 가정교회는 섬김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권위의식을 제거하고 교회의 체질을 바꿀 수 있습니다. 가정교회는 영혼구원이라는 의미 있는 일에 모든 것을 걸기 때문에 누구나 쥐고 흔들 수 있는 깃발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정교회의 세 축, 네 기둥을 잘 이해하고 실천해 나가고, 그 바탕위에서 우리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선해 나간다면 교회가 외면당하는 이 시대에 세상의 필요를 채우는 교회로 새롭게 세워져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신: 지난 한 주 목자수련회와 초원지기 컨퍼런스로 칼럼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제가 존경하는 이수관 목사님의 칼럼을 편집하여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