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3월 26일 칼럼 잔치를 앞두고(가족음악회)
오늘 주일은 이웃(태신자)을 초청해서 음악회를 갖는 태신자(이웃) 초청 가족음악회가 있는 날입니다. 처음 교회에 부임해서 교회 표어를 “괜찮은 이웃, 정직에 도전하는 공동체”라고 해놓고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이 지역주민들에게 괜찮은 이웃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 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지역에서 소외된다면 빛과 소금으로써의 본질적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 봄이 올 때 쯤 지역주민들을 위해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면 어떨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기적처럼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양을 초청해서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본당이 꽉 차서 3층 자모실에까지 사람들이 올라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하고 한편으론 무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예로 제가 그때 드렸던 사례비만 생각해도 얼마나 턱없이 드렸는지 최근 희아양을 초청하려다 포기한 교회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중성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우리가 한 일은 별로 없고 자발적으로 온 분들이 많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해는 좀 다르게 접근을 했습니다. 먼저 대중성은 약할지 몰라도 신실한 분을 좀 초청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종의 정면승부라고나 할까요? 사실, 오늘날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클래식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분명 클래식이 주는 깊이나 안정감은 또 다르게 우리를 풍성하게 할 줄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청중들을 우리 힘으로 우리가 기도하고 작정한 사람들을 초청해보자는 것입니다. 이미 지난 태신자 작정을 통해 98명의 성도님들이 242 명의 태신자를 작정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 얼마나 초청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5%만 와도 50명이 넘어갑니다. 우리가 보통 오후에 160명 정도 예배에 참여하니까 50명만 초청되어져도 200명이 넘어갑니다. 아마 자리가 모자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길 지금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남은 일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일입니다. 예배부터 순종하는 맘으로 영혼을 아파하는 맘으로 드립시다. 그리고 예배를 마친 뒤부터 구석구석에서 요구되어지는 작은 순종들 앞에 예민하게 반응해주시길 부탁합니다. 내가 초청한 사람은 오지 않았으니까 난 할일이 없어...라는 자세가 아니라 오늘 오신 분들은 누구나 한 개인의 초청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초청자임을 기억하고 함께 섬기십시다. 환한 미소, 먼저 소개하는 인사, 앞자리부터 채우는 매너, 혹 사람들이 넘칠 때 초청자와 초청되어진 사람을 위해 양보하는 미덕! 이 모든 것이 오늘 필요한 순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