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세대통합예배 및 마을교회에 대한 고민과 설득을 시작하며(목회서신13)
다운공동체는 교회 설립부터 ‘교회다운, 성도다운’ 정신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이름이 다운교회였습니다. 아마도 이 말은 “성경대로”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말이 얼마나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몰랐고 그렇기 때문에 그 해석을 ‘구체화하고 실재화’ 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희생을 치러오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은 반드시 따르지만 그럼에도 본질을 깨닫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도 있고, 고통만 겪는 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의견을 내고 토론을 하여도 내 뜻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고통은 더 클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안되어도 받아들이는 훈련이 된 분들은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마음의 문을 닫기도 하고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참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좀 더 ‘성경대로’의 공동체를 위해서 변화를 추구할 때 가능한 아픔과 갈등을 최소화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경대로’ 의 작업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담임목사로서의 저의 숙명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행히 우리 공동체 안에는 자신의 의견을 내고 그것을 가지고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는 교역자와 당회가 있습니다. 또한 이를 믿고 결과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수용해 주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쓰고 있는 목회서신 역시 그러한 신뢰 위에서 힘든 글이지만 쓰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몇 주에 걸쳐서 고민을 했지만 저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정교회로의 큰 전환을 경험했기 때문에 마을교회로의 전환은 쉬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착각이었습니다. 총론에는 동의할지 몰라도 각론에서는 또 다른 숙제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옳은 길이기에 가보기로 합니다.
먼저 밝혀 두는 것은 이 글은 여러분들이 지난 한달 동안 여러 모양으로 보여준 고민과 질문 그리고 건의해 주신 다양한 의견들과 진심을 담은 글들을 반복해서 읽고서 썼다는 겁니다. 또 개인적으로 연관된 분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교역자들과 토론도 하고 장로님들과도 공유하면서 쓴 글입니다. 그러니 부디 열린 맘으로 읽어주시고 함께 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세상의 어떤 변화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어느 정도는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글 속에도 나오지만 해보고 부족한 것은 보완해 보십시다. 부디 세대통합 예배와 마을 교회로의 전환에서는 희생이 최소화되길 바랄 뿐입니다.
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우리 교회 다음세대 사역의 이름은 ‘마을교회’입니다. 지금까지는 세대통합목회라는 이름으로 우리교회 다음세대 사역의 의미를 규정해 왔습니다만, 작년부터 교역자들과 함께 이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두 가지 의미입니다. 첫 번째는 한 아이가 자라는 데는 ‘마을’이라는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때 마을은 울타리로서 온 세대를 포함합니다. 두 번째 의미는 실제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마을 속에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마을의 또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날 것입니다. 첫 번째는 매주일 1부에 드리는 모리아산 예배라는 이름의 세대통합 예배입니다. 세대통합 예배는 우리에게 낯선 예배는 아닙니다. 제가 부임하고 매주 오후 및 절기에 온 세대가 모여서 모리아산 예배 또는 쥬빌리 예배라는 이름으로 세대통합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는 토요일 새벽기도회를 자녀들과 함께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절기를 포함하여 매월 마지막 주일에 전 세대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 숫자가 늘어나면서 오후예배에 자녀들과 참여하는 비율이 너무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광야를 지나면서 다음세대 사역에 대한 그림을 구체화하였고 구영리 입당과 함께 매주 1부 예배를 세대통합예배로 드리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2부 부서별 모임(가칭)의 강화”입니다. 물론 전에도 각 부서는 예배를 드리고 모둠별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모임은 솔직히 미약했고 시간은 짧았습니다. 아무래도 예배가 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일부분이었습니다. 교역자들과 함께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2부 부서별 모임을 각 부서의 특수성을 살려서 독립된 모임으로 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배와 성경공부를 분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는 부모님들과 함께 드리고, 성경공부는 교사와 함께 충분히 재미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토요 마을교회”입니다. 이 부분은 따로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오늘은 위 3가지 가운데서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세대통합예배와 관련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왜”라는 측면입니다. 두 번째는 “현실적인 측면”입니다.
가장 먼저 궁금하거나 어떤 분들에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왜 굳이 세대통합예배를 드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일 것입니다. 이 답을 하려면 이 지면을 가지고는 부족할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번 주일날 “세대통합예배를 말한다.”라는 제목의 책자를 배부하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2018년 월간목회 9월호에 실린 특집 글입니다. 출판사의 양해를 얻어서 여러분들에게 배부합니다.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읽기에는 다소 양이 많을지 몰라도 이것이 왜라는 질문에 답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제 입장을 말씀드리면, “세대통합예배가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좀 더 성경적이고 멀리 보면 그것이 자녀들의 믿음의 계승에 지금의 시스템보다는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가정교회도 그러했지만 이 또한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그리고 성경을 연구하는 목사로서 다음세대 문제로 짧은 지식이지만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이것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본질에 더 가깝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앞으로 설교를 통해서 좀 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현실적인 측면입니다. 우리는 약 2달에 걸쳐서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준공이 나지 않아서 모두가 함께 한번 예배를 드렸고 준공 이후부터는 1부 예배를 자녀들과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족한다는 분들(설문 조사자 중에서는 77%)도 있지만 옛날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23%) 있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교역자들과 몇 차례에 걸쳐 그야말로 난상토론을 벌렸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히자면 오히려 저는 그동안 목회과정에서 생긴 갈등이 주는 피로누적으로 세대통합예배를 포기하고 원래대로 돌아가자는 쪽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여기에 하는 것이 적합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솔직히 저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지쳤습니다. 물론 여러분들도 힘드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역자들은 이것이 성경적으로 옳다는 쪽이었습니다. 감사를 해야겠지요? 원래 신학생일 때 부교역자일 때가 이론적으로는 가장 옳습니다. ^^; 제가 지쳤지만 이번에 그 부분을 붙잡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역자들은 통합 예배를 포기하고 싶은 저에게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것에 대한 감사를 올려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 중심이어야 하며 개인보다는 공동체적으로 함께 드리는 것이 더 성경적입니다.” 그래서 “자녀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들에게는 힘든 시간일수 있지만 함께 ‘드리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자녀들이 은혜를 받고 좋은 예배자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부모님과 함께 하나님 앞에 예배드림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또래 세대의 수준별 또는 특수성을 고려해서 1부 예배 시간에 가능한 선에서 자녀들을 배려할 방법을 찾고, 그들이 예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고려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또한 예배 이후 2부 부서별 모임 시간을 자녀들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교사들을 준비시키겠다고 약속을 해 주었습니다. 그 말에 제가 넘어갔습니다.
아래 글은 그에 따른 1부 예배에 대한 자녀들을 배려한 “개나 걸 찾기”의 결과들입니다. 부족하겠지만 저만큼이나 다운공동체를 사랑하는 우리 교역자들의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가정교회로 교회의 존재목적과 그것을 이루는 방법에서 성경적이 되고 이제 마을교회로 다음세대 사역에서도 성경적인 교회가 되길 바라는 그들의 마음이니 저처럼 설득당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회의록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세대통합예배에 대한 교역자 회의록 (2019년 4월7일 저녁 10시)
1. 1부 예배 시 자녀들을 위해서 '새번역성경' 사용. 단 사도신경은 개역개정으로 한다. 1부 예배 시에는 찬양, 기도 말씀을 앞부분에 두고, 설교 후에 다른 순서를 갖는다. 특히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간증을 하는 시간을 준비하도록 한다.
2.1부 예배 시 어린이팀 파워틴 구역 지정. 푯말 만들기 (GMK-중앙 앞 2,3분단6줄까지 120석, 파워틴- 5분단 앞(악기쪽) 50석 부족하면 4분단까지, 그 구역에서 부모와 함께 앉는다.
3. 매 달 첫 주 성찬식이 있는 주일은 교육부서 자체예배로 드리고, 교사들은 2부 성찬예배에 참여한다. 1부 자체 예배는 10시30분까지 마치고, 2부 부서별 모임은 11시 30분까지 마친다. 이 때 1부 찬양인도는 박희용 장로님이 맡는다.
4. 매 주 돌아가면서 학년별로 콰이어를 선다. (콰이어 연습은 오전 9시 본당), 2주, 5주차-파워틴, 3주차-5,6학년, 4주차-3,4학년. 또한 매 달 3번째 주일에 홍상원 목사가 설교 순서일 때는 양순안 전도사가 찬양인도를 한다.(토요일 연습은 홍상원 목사가 진행)
5. 성경봉독 및 하브루타를 양순안 전도사가 진행한다. 양순안 전도사가 설교일 경우, 홍상원 목사가 하브루타 및 성경봉독 진행한다.
6. 1부 봉헌은 설교 후 축도 전 결단찬양 시간에 교육부서에 한해서만 헌금바구니를 돌려 진행한다. 교육적인 차원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 어른들은 들어올 때 헌금 (헌신찬양 1.2절은 앉은 채로 마지막 절은 다 같이 일어나서)
7. 설교노트는 장년용/파워틴용을 따로 만들어 주일아침 제공한다. GMK는 자체공책 준비
8. 1부 예배순서 뒤에 교육부서 2부 모임시간 표기를 해서 예배만큼이나 중요함을 알린다.
9. 주일학교 파워틴 자녀가 없는 분들은 2부 예배 참여하도록 권면한다.
10. 1부 예배가 부모와 함께 하는 의지적인 순종의 의미가 있다면, 2부는 교사와 함께하며 성경공부를 통해서 지적인 부분을 성장시키는 의미를 담는다. 따라서 2부는 각 부서별로 교사와 식탁의 교제, 찬양, 새가족 소개, 광고 및 활동 등을 하지만 성경공부가 주목적이다. 그리고 3부 토요 마을교회를 통해서 세상 속에서 형, 누나, 오빠 언니의 인도를 따라 삶을 나누는데 중점을 둔다. 이를 통해서 신앙의 의,지,정이 균형 있게 자라도록 돕는다.
참고: 다음세대 사역의 기본 뼈대
1부 예배(의)
(아이들을 배려해서 “찬양 기도 설교”를 앞부분에 하고 광고나 기타 행사는 뒤에, 심플하게)
찬양 – 찬양팀 및 콰이어
기도: 사도신경, 합심기도, 대표기도
말씀: 성경봉독 및 하브루타, 말씀
결단 및 기도(부모들 자녀들을 위한 기도)
광고 및 수료 등 말씀에 대한 간증:
(지난 주 설교에 대한 간증 또는 설교 노트를 작성하도록 동기부여)
봉헌 및 결단 찬양
축도
(순서는 진행해보고 보완)
2부 교사와 함께 하는 식탁의 교제 및 또래별 활동 및 성경공부(지)
3부: 토요 마을교회(정)
마을교회는 형과 누나, 언니, 오빠가 동생들과 함께 말씀을 가지고 삶을 나누는 현장
마을교회 시작은 어린이 사역부는 5월부터, 파워틴은 8월초부터 시행한다.
이상의 것을 적어도 6개월 이상 해 보고 다시 검토하고 보완하는 것으로 한다.
(최종정리: 2019년 4월12일)
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변화를 좋아하지만, 변화에 대한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구영리 새 예배당에서 세운 가정교회, 마을교회, 세상 속 교회로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 가 보십시다. 이런 것들이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분명 작금의 한국교회는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드리면, 담임목사로서의 다운공동체에서의 세대통합목회는 가정교회보다 훨씬 이전부터 제게 주신 부담이었습니다. 결코 갑자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가정교회를 한 이유가 세대통합목회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