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목회서신 7 함께 건강한 공동체에서 성숙한 공동체로 넘어갑시다.
목회서신 7
함께 건강한 공동체에서 성숙한 공동체로 넘어갑시다.
우리 각자 인생도 그렇지만, 목회를 하다보면 공동체 안에 뭔가 막힐 때가 있습니다. 돌아보면 많은 막힘이 있었습니다. 내면적인 이유로 막힐 때도 있고, 외적인 문제로 막힐 때도 있었습니다. 유치한 문제로 막힐 때도 있고 정말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인간적인 문제도 있었고 분명 영적이라고 말할만한 원인도 있었습니다. 숫자의 문제도 있었고 환경적인 문제도 있었고 교인들의 문제도 있었고 리더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많은 막힘들 앞에서 몇 가지 정리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1) 어떤 공동체도 막힘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 2)그것을 견뎌내든지 돌파해야 한다는 것 3) 돌파에는 치열함이 필요하다는 것 4)그나마 원인을 알면 조금 쉽다는 것 5) 공동체가 함께 변해야 한다는 것 6)그럼에도 가슴 아프지만 변화에 동참하지 못하는 분들이 나온다는 것 7)시작은 위로부터 흘러 내려 가야한다는 것 8)변화를 위한 실제적인 대안과 행동이 필요하고 많은 경우 담임목사가 제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 9)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 10)그럼에도 이것이 최선이지 전부이거나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놀라운 것은 막힘이 있을 때마다 돌파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과 견딜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더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공동체에 주신 지혜나 해결책을 제시했을 때 변화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다운 가족들이 함께 순종하고 헌신하고 도전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우리 다운 가족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많고”,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건강한 공동체가 되었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그런데 이제 우리가 다시 한번 기로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번에는 무슨 큰 막힘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행복한 고민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건강한 공동체를 성숙한 공동체로 돌파해 보자는 것입니다. 글 하나를 나눕니다. 아래 글은 최영기 목사님의 가사원 칼럼에 나오는 교회 성장학 전문가의 글입니다. 교회 성장학에 대해 서 또한 아래 글에 대해서 제가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두고 인용합니다. 그렇지만 분명 우리의 지금 막힘에 대해서 참고할 만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Lyle Shaller라는 교회 성장학 전문가가, 작은 교회, 중형 교회, 대형 교회라는 제목의 3권의 책을 썼습니다. 작은 교회라면 교인 숫자가 100명 미만이고 중형교회는 교인 숫자가 몇 백 명 되는 교회이고, 큰 교회는 교인이 천 명 이상 되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분의 메시지는 교회가 커지면서 목회 방식이나, 목회자와 교인들과의 관계도 변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즉, 교인 사이즈가 작을 때에는 담임 목사의 역할은 가장이요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교회 사이즈가 중형이 되면 성도들이 사역을 하고, 담임 목사는 이들의 멘토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교회 사이즈가 아주 커지면 담임 목회자는 경영인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교회 사역이 원활하게 이루어집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교회 사이즈가 달라지면서 목회방법이나 교인과의 관계가 변해야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인들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수용하지 못해서 “교회가 커지니 목사님이 변했다”는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해 버리고 시험들어 버립니다. 이로 인해 교회가 조금 커지면 분열하고, 교회가 조금 커지면 분열해서 항상 작은 사이즈를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하나님이 상급 주실 때에 교인 숫자를 묻지 아니하시고 얼마나 충성했는지를 물으실 것입니다. 작은 교회를 목회하라고 하면 작은 교회를 목회하고, 큰 교회를 목회하라고 하면 큰 교회를 목회하는 것이 종으로서의 갖추어야할 자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들을 보내주시고 교회를 성장시켜 주시면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자신의 역량을 넓히고, 성도들과의 관계 변화를 수용해야합니다. 아무리 성도들에게 아버지로 남아있고 싶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멘토가 되고, 경영인이 되어야합니다. 또한 성도들도 이러한 목회자의 변신에 배신감을 느끼거나 섭섭해 하지 말아야합니다.”
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저는 이번 부흥집회를 지나면서 제 내면에서 해결되지 않는 한 가지 문제 “두려움”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한 지금 우리 공동체가 나름 건강하지만, 성숙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들을 보면서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지면상 이렇게 밖에 표현 못함을 이해 바라며 열린 맘으로 읽고 이제 “건강한 공동체를 넘어서 성숙한 공동체”로 가는 변화에 함께 동참해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1)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중형교회로 들어섰습니다. (2) 따라서 이에 맞는 리더십과 팔로우십(따르는 사람의 자세)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3)목자들은 목원들을, 목사는 목자와 초원지기들을 섬기는 역할 분담이 지금보다는 좀 더 필요 합니다. 아울러 교역자들은 교육목자들을 저는 교역자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책임감 있게 도와야 할 것입니다. (4) 이유는 제가 영적인 섬김인 기도와 말씀으로는 전체 교인들을 섬길 수는 있지만, 교우 전체를 직접 만나고 몸으로 섬기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5) 이렇게 되려면 각 목장이나 소그룹 리더들은 자신의 이름에 걸 맞는 덕과 역할과 책임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저와 교역자들 그리고 장로님들 역시 더욱 희생과 책임을 통해 존경받는 리더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6)가장 어려운 부분은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경우 위로와 권면으로 문제를 풀어왔지만, 앞으로는 아주 최악의 경우 “바른 소리”나 “책임지는 행동”을 요구할 때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조금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넓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7) 동시에 교우 여러분들도 문제나 섭섭함을 목회자의 인간적인 위로가 아닌 말씀과 목장을 통해서 스스로 이겨내야 할 부분이 많음을 의미합니다. (8) 또한 목원들은 목자를 진심으로 따르고 영혼구원을 위해 협력하고 순종해 주어야 합니다. 목자들 역시 부족하지만 제게 있는 성경적인 리더십이 있다면 그 부분은 배워서 같은 정신으로 협력하며 사역해 주시기 바랍니다. (9) 담임목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좀 더 멀리보고 교회의 미래를 위한 방향을 잡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10) 제가 사람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찾아서 공동체에 제시하고 그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는 목사가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이 공동체를 이끌 리더가 되도록 시간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 미숙한 표현으로 인한 오해가 있다면 용서하시고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2016년 7월 10일 박종국 목사 드림
지난 월화수 3일 동안 박은조 목사님을 모시고 집회를 했습니다. 부흥회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 칼럼에 있으니 참고해주시고요. 이런 집회가 끝나고 나면, 담임목사로서 참여하지 않은 분들을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또 함께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으로 은혜를 주시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공동체적으로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통해서 은혜의 파도를 일으키실 때 잘 타야하거든요. 그러니 여러분 차선이지만, 꼭 시디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부턴 기대하는 맘으로 참여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설교를 부흥회 리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그 이유는 목사 입장에서는 이 말씀이 한 순간의 감동으로 끝나버리고 우리 삶을 변화시키지 못할까봐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사실 말씀은 순종할 때 능력이 되거든요. 이번 집회에서도 여러분, 말씀을 통해서 내 삶에 한 두 가지라도 적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특히 내 약점과 관련하여 정말 순종하고 결단하고 연습할 때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말씀 더 듣는 것 보다 집회 말씀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실 저도 집회를 나가지만 집회의 말씀은 보통 그 목회자의 목회가운데 정말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말씀들을 나눌 때가 많거든요...그런데 저는 이번에 개인적으로 토요일 새벽 설교가 지금 우리 교회의 많이 지쳐있는 분들에게 필요한 말씀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습하듯이 저와 함께 집회 말씀을 한번 살펴보길 원합니다. 또한 그날 목사님이 갑자기 새벽설교인데도 앞부분에 너무 원고에 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바람에 진짜 준비한 뒷 부분의 말씀을 우리 교우들이 출근으로 인해서 대부분 못듣고 나가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먼저 다시 한번 이번 부흥회 주제를 생각해 봅니다.
1. 부흥회 주제
세상의 유일한 희망,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라 !
이번 주제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 자체가 동의가 안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언젠가는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가 너무 늦은 때가 아니길 바랄뿐입니다. 교회가 여전히 문제가 많고 아픔이 많지만 그래도 저는 믿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라는 것을....그런데 그 교회를 우리가 세우지 않으면 않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뒷 문장이 뭔가하면 내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이거든요..우리의 문제가 뭔가 하면..사실 자기가 생각하는 교회를 세우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교회를 세워야 하거든요..그런데 그것이 참쉽지 않거든요..말씀은 변함이 없지만 시대 상황은 계속 변해 가거든요...여러분들이 살면서 좋았던 기억의 교회가 있습니까? 그것도 오리지널 초대교회는 아니거든요. 그 당시 목회자가 지도자들이 시대에 맞는 하나님이 교회를 세웠기 때문이거든요..이것을 우리가 놓치면 안됩니다.
사실 제가 알기로 강사목사님은 지금까지 치열할 정도로 교회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서 고민해 오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다양한 한국교회의 변화를 경험했고 자신이 또한 변화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의 사역의 출발에서 이미 고민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처음 사역한 교회와 사역자체가 이미 그 당시에는 참 파격적이었습니다. 개척하신 장로님과 담임교역자가 설교를 나누어서 했거든요..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었습니다. 보수교단이면서도 30대의 나이에 당시 한국교회와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장로이면서 서울대학교수 였던 손봉호 장로님에게 소위 스카웃 되어 그 분이 개척한 교회에서 전임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 장로님이 신학까지 하시고 부르심이 없다면서 목사 안수만 안받으신겁니다. 그래서 설교도 5:5로 나누어서 하는 겁니다. 제가 몇 번을 여쭤보다 결코 힘들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만 그럴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분도 큰 그릇인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 뒤 그 장로님은 계속해서 자신만 따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분립개척해 나갔으니까요.
사실 많은 역사가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강 있듯이 이 분 역시 그 과정에서 분립전문가가 되었고 분립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시대 상황에 맞는 분립모델을 계속해서 찾아가고 있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 교회가 학교를 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제가 이 분을 뵈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의지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찾아서 순종하려고 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서 이번 부흥회의 메세지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그 교회를 세우는 일군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다섯 가지로 설명되어집니다. 첫 번째는 성령의 전으로서의 우리 자신이 교회입니다. 두 번째는 가정인 교회입니다. 세 번째는 목장인 교회입니다. 네 번째는 목장의 연합체인 지역교회입니다. 다섯 번째는 우주적 교회입니다. 전 세계적이고 태초이래도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는 교회입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핵심은 코이노니아였습니다. 교제와 공동체성입니다.
두 번째 사람 입니다. 결국 교회를 세우는 것은 사람입니다. 일군입니다. 맞습니다. 교회는 결국 어떤 사람들이 순종하고 리더십을 가지며..문제를 해결하는 얼마나 갖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사실 이번에 강사목사님과 저희 지역에 50미만의 개척교회 목회자들과 좌담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분 역시 120명 정도 되는 교회에서부터 시작했고 많은 분리해나간 후배 교역자들의 교회를 지켜보셨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마음을 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교회는 초기 리더들을 얼마나 잘 훈련시키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납니다. 이분이 12분의 분립과 함께 자신이 3번 직접 분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개척에 최적화된 분들이 30가정이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더 이상 미성숙하지도 않고 문제해결도 있는 그야말로 교회를 위해서 목회자처럼 한 방향으로 사역하는 사람들입니다. 서울사람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요..그런데 많은 개척교회는 이 리더들 관리하너라고 한 걸음도 사역으로 나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이 고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300명 넘는 교회에 맞는 담임목사의 리더십과 또 장로의 리더십..권사의 리더십이 뭔지...그리고 목자목녀의 리더십이 뭔지를 우리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두 번에 걸쳐서 정말 주님이 원하는 일군이 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수요일 새벽에는 오늘 본문을 가지고 일군이 되는 기본적인 조건을 말씀하셨고. 저녁에는 구체적으로 일군이 갖추어야 할 7가지 성품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그 중에서 첫 번째 말씀을 여러분과 리뷰, 다시 보기로 주일 말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2.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일군
1) 우리 모두는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를 위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나이가 많아서 늙으면 아이가 되고 자녀가 부모를 섬겨야 하는 일꾼 역할을 해야 하는 날이 옵니다. 부부가 서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돕는 배필이 되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세운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목자로 세우셨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공동체 안의 다양한 사역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렇게 이 지역 교회공동체를 세워가고 싶으신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직장에서 하는 일을 통해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에 도움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우릴 통해 하길 원하시는 겁니다.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서야하고 성전은 사람이기에 가서 가정을 세우면 그것도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야하고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면 거기도 하나님의 성전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장이 아니면 사장이 아닌대로 내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도록 섬기는 일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일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고 싶다할 때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돈
하나님이 돈을 백억쯤 주시면,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하나님 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근데 돈 가지고 되면 왜 하나님이 돈을 안 주시겠습니까. 자기 아들 예수의 목숨도 우리에게 주신분인데 돈가지고 되는 일이면 왜 돈을 안 주시겠습니까. 돈을 과대평가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렇다고 돈을 과소평가 해서도 안됩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단잠을 사지는 못합니다. 돈으로 책은 사도 지혜는 못삽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가치만큼만 돈을 인정하는 겁니다. 돈을 위해 목숨 걸면 안됩니다. 돈 때문에 건강 잃으면 안됩니다. 돈 때문에 친구 잃으면 안 됩니다. 돈 때문에 자녀 잃으면 안됩니다.
어쨌든 이런 일꾼이 되기 위해선 물론 돈도 필요하고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관계를 잘맺는 훈련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 필요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 절대로 없어선 안되는 것은
3.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에게 가야한다.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걸 하나님 앞에서 먼저 하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여자,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도 그 사람의 짐을 져 줄 수 없습니다. 마음은 뻔한데 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아해도 내 짐이 한 짐인데, 내가 지금 허리가 휘어서 일어날 수가 없는데, 아무리 사랑스런 아이를 낳고 ‘이 아이를 위해서 내 목숨이라도 주겠다’ 하지만 마음 뿐이지 못 줍니다. 내 짐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 짐을 져주시는 주님께서 짐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짓누르는 가장 무거운 짐은 뭘까요?
1) 우리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죄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우리의 죄 짐을 먼저 져주시고 우리가 날마다 주님 앞에 짐을 내려놓는 이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래야 내 어깨가 조금 가벼워 지면서 안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너무 힘이 들면 아무 것도 안보입니다. 나만 보이지. 내가 이렇게 애쓰는데 마누라는 뭐해. 안보입니다. 그런데 어깨가 비고 내 허리가 좀 피면 아내의 소리가 들리고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믿음이란건 참 놀라운 겁니다. 하나님께서 짐을 져주시는 은혜를 누리고 나면, 그래서 내 허리가 좀 피고 내 상처가 좀 씻기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사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분명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짐은 계속 있습니다. 공부의 짐, 과제의 짐, 상처의 짐, 새로운 죄가 우리를 계속 내리 누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주님 앞에 우리 짐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작업을 못합니다.
목사님 친구 분이 설교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요일에 교회 사무실 전화해서 이번주 설교는 시편 23편 1~6절,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했더니 사무간사가 ‘그게 전부입니까’ 이러길래 ‘뭐가 더 필요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끝냈습니다. 그렇게 주보가 준비되고 인쇄된 주보를 확인하는데 설교본문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뭐가 더 필요해’ 이렇게 나왔더라는 겁니다. 목사님이 깜짝 놀라서 야단을 치려고 인터폰을 들었다가 다시 보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뭐가 더 필요해’ 제목이 참 괜찮더라는 겁니다.
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뭐가 더 필요해!
여러분,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뭐가 더 필요해’ 핵심이 뭘까요.
지난 한주간도. 우리가 좀 부족하지만, 실수하지만 그래도 하나님만 붙들고 열심히 따라간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만 가면 그걸로 충분해. ‘하나님이 내 삶을 인도하시니 뭐가 더 필요해’ 이게 내 마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인도하셔도 내 딸 시집가야 돼. 승진해야돼. 하나님이 내 삶을 주관 해주신다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내가 원하는 대학 가게 해주셔야지’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면 이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하나님을 조정하려고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실 이거 때문에 우리 삶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필요를 놓고 분명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항상 더 놀랍게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이 때로는 방향을 바꾸시더라도, 때로는 주져 앉히더라도 ‘뭔가 길이 있을 것이다. 뭔가 하나님께서도 놀라운 일들을 행할 것이다.’ 절대 나를 실망안 시킬 것이다. 이 믿음 가지고 가는 것이 바로 주님께 짐을 내려 놓는 믿음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쉼을 경험할 것입니다.
4.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과 같이 짐을 져야 합니다.
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첫 번째 쉼은 주님이 져 주시는 짐이었습니다. 두 번째 쉼은 주님이 지라고 하는 짐을 짊어지고 얻는 쉼입니다. 이것이 참 역설입니다. 금방 짐을 내려놓으라고 했다가 다시 지랍니다. 그런데 잘 보면. 다릅니다. 전자는 내가 지고 싶은 짐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주님이 맡겨주는 짐이고 함께 지는 짐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첫 번째 쉼은 경험하는데 두 번째 쉼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주님이 나에게 지라고 한 짐이 없는데?’ 이러면서 안집니다. 주님이 맡긴 짐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결혼 하신 여러분, 주님께서 당신에게 당신 남편의 짐, 당신 아내의 짐을 대신 지라고 결혼시켰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서로에게 있는 약점 때문에 이 사람을 나에게 붙여주신 것이구나. 그게 주님이 우리에게 지워주신 멍에입니다. 자녀들 역시 주님이 지고 싶은 짐을 나에게 지워주신 내 보물덩어리입니다. 소중한 보물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자녀들에게 부족한 것 있어도 날마다 우리가 기뻐하면서 꿈을 꾸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면 됩니다. 이것이 멍에입니다. 또한 목자목녀들도 멍에가 있습니다. 목원들도 멍에게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면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 주님의 나라를 위한 멍에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어려움 멍에를 자꾸 져내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 멍에를 안 질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무겁다고 느껴지기 때문이겠지요..그래서 우리는 이 쉼을 누리기 위해서 먼저 선택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짐의 문제가 아니고 선택의 문제입니다.
1)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은 경험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
오늘 본문 30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여러분 답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정에서건 이웃과의 관계에서건 직장에서건 다른 사람의 짐을 지는 일이 쉬운 일입니까, 어려운 일입니까. 해보면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섬기라고 하는 여자, 하나님이 섬기라고 하는 남자가 집에 붙어있는데 이 인간을 섬겨야 되는데, 하나님이 섬기라고 하는데, 그게 쉬운 일입니까? 아니지요..그런데 주님은 쉽다고 말씀합니다.
그럼. 다시 한번 묻습니다.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사실 이 질문은 내가 경험해 보니까 어렵더라는 걸 묻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선택을 묻는 것입니다. 내가 경험해 보니 너무나 어렵다. 근데 하나님은 쉽다고 하신다. 너는 어느 쪽을 선택 할 것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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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내 경험과 사람들이 하는 말을 선택 할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선택할것인가. 이걸 묻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길이 더 쉽고 놀랍다고요 분명 처음에는 힘이 듭니다. 그러나 갈수록 쉬워집니다. 그래서 자꾸 이 어려운 일을 해 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럼에도 지금 좀 찝찝한분 있지요? 쉽다고는 했는데. 성경에 쓰여는 있는데, 쉽다가 답인 것 같기는 한데, 하나님이 쉽다고 하니까 쉬운줄 알고 그냥 살면되는건가.
이런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어중간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진짜로 쉽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진짜로 쉬울까요.
2) 주님께 배우면 쉽습니다.
29절에서 한 단어만 찾으면 됩니다. 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그것은 바로 배우라입니다. 우리는 이미 멍에는 메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쉽고 어떤 사람은 힘이 듭니다. 차이는 딱 하나입니다. 배우라입니다. 즉 배우면 쉽고 안 배우면 어렵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우리 인생에서 안배우고 하는 일이 뭐가 있습니까. 정말 긴급한 것 몇 가지는 하나님이 안배우고 하도록 하셨는데 다른건 다 배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면 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지 않아서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많은 배움중에서도 가장 먼저 예수님을 배워야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라’고 합니다.
3)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온유하다면, 우리가 조금만 더 겸손하면 정말 좋은 일꾼될 수 있습니다. 다른 것도 많이 배워야지만 심성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른 거 좀 부족해도 그리스도를 닮은 신성을 잘 갖추어 사회에 나가면 놀라운 리더가 될 것입니다. 세상 속에는 이런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자기 잇속이나 챙기려고 하고, 한 푼이라도 더 먹으려고 하고, 딴사람 등을 치든 말든 속이든 말든 내 것만 생각하는 이리떼가 가득한 세상 속에 주님을 닮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직장에 들어가서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섬기고, 자기 주장 하지 않고, 다른사람 챙겨주고 이런 사람을 보면 사람들이 충격을 받습니다. 그걸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교회에는 정말 많은 영광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교회에서 예수 믿은 한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자기가 예수 믿기 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변해 있는게 자기는 너무 신기하답니다..그 분이 언젠가 간증하겠지만..정말 혼자 듣기에는 아까운 이야기가 너무 많았습니다. 정말 저 분이 교회가 아니면 어떻게 바뀌겠나 이런 분들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정말 교회는 놀랍습니다.
그런데 그 반면에 교회에는 정말 어둠이 있습니다 악이 있습니다. 인간이 참 약하지만 악합니다. 이 양면을 다 봐야 하거든요...뭔 섭섭한 일은 그렇게 많은지...그렇게 강조하는데도 왜 그리 말실수는 많은지..상거래 하지말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하는지...그렇게 하는데도 왜 그렇게 무례한지..왜 그렇게 미성숙한지...왜 그리 자기는 못보는지...사실입니다...그런데도 말입니다. 교회는 세워져 갑니다. 왜 온유와 겸손을 주님께서 배우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 교회의 위기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빚일까요? 건축일까요? 아닙니다. 주님께로부터 온유와 겸손을 배우려고 하지 않으려는 교만이 위기입니다. 그런데 또 우리 교회의 소망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래도 그런 어두움과 악 가운데서도 여전히 주님의 멍에를 지고 주님께로부터 온유와 겸손을 배우며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데 아직도 완벽한 사람 완벽한 환경의 교회를 꿈꿉니가? 그런 교회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배우지 않는 분들은 이시간 회개하고 배우려고 하십시오....그러나 배우고 있는 분들 조금만 문제가 오면 그만두고 도망가고 그러지 마십시오..그러면 이교회는 진짜 미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교회가 바로 우리의 이런 문제를 넘어서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세우려고 우리를 부르신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자리에 부름받았는지 모릅니다.
나 하나 때문에 내 옆에 죽어가는 생명이 내가 드러내는 예수그리스도 모습을 보고, 이게 길인가보다 하고 따라와서는 그 사람이 예수 믿고 세례를 받는데 그 뒤에 앉아서 계속 울고 있는 사람이 그 목장의 목자입니다. 그 사람 예수 믿게 하려고 온갖 정성을 다하고, 생명의 삶 듣게 하려고 목자부부하고 번갈아가면서 애 둘 데리고 놀아주고 관심쏟는 걸 13주를 계속합니다. 이 어려운 일을 자꾸 해 냅니다. 목자가. 목자의 수고가 없으면 그들이 어떻게 생명의 삶을 들을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분들 수군거리면 안됩니다...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말과 태도에서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교회는 말로 망합니다..특히 말을 옮기지 마십시오..생각해서 말해주지면 사실 말해준 사람 배신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 이런 교회는 복음의 기쁨을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행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그래서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짐을 져 주신 그 기쁨, 허리가 펴이는 기쁨을 아는 사람에 의해서 오늘 이 하나님나라 운동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운동에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짐을 내려놓는 분입니까? 여러분들은 주님게 배우는 분입니까? 아니면 배우는 사람 힘빠지게 하는 사람입니까?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