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가정교회에서의 말의 위력
얼마 전, 지역 신문에 어떤 직업군에 대한 부끄러운 사건이(자세히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기사화가 된 것을 보았습니다. 흔히 있는 일이라 그냥 넘기려고 했습니다만, 나중에 다른 통로를 통해 그 기사가 어떻게 작성되었는지를 알게 되고 나니 남의 일이 아니다 싶어 이 글을 씁니다. 그 기사는 다름 아닌 교회의 구역모임(우리의 목장모임과 비슷한 모임)에서 들은 것이 기자의 귀까지 흘러 들어가 기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혼자 상상력을 발휘해 봅니다. 어떤 크리스천이 직장에서의 어려운 일을 목장모임에 와서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두 가지 전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목원들을 가족처럼 믿었을 것이고, 또 함께 기도함으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지혜나 하나님의 응답을 원했을 것입니다. 아마 그 모임의 대부분의 목원들은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나누었을 것이고, 또 함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헤어졌습니다.
그 중의 누군가가 가족이나 아주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결코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들어주기만을 바라며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이런 맘으로 몇 사람을 거치면서 기사화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가정교회에서 말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픔과 기쁨을 말을 통해서 오픈합니다. 말은 분명 축복입니다. 그 말 때문에 웃기도 하고 함께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치료가 되는 경험도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비밀유지”가 될 때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는 완벽한 비밀유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만 전제되면 좋겠습니다. 먼저, 누군가로부터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이 말은 정말 무덤까지 가져갈 말인지 최소한 그 시간 듣고 잊어버리기로 결심을 해야 할 말인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훈련을 통해 가능합니다. 제 아내에게는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제가 직업상 말도 많지만, 목회를 하면서 제 아내가 모르는 그러나 이제는 저 역시도 기억이 안 나는 일들이 제게는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장로님과 권사님을 통해 배웠습니다. 아마 제 아내도 그럴 것이라고 봅니다. 결코 섭섭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어떤 말은 분명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도 합니다.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단, 그 사람에게서 끝이 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전해지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최초로 나눈 사람은 직접 본 것을 이야기 해 준 것입니다. 오해가 생길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카더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카더라”가 무서운 것입니다. “카더라”가 될 이야기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두 가지만 지켜져도 교회는 충분히 건강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말이 많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맞습니다!! 그러나 생각만큼 “당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설령 당신이야기를 하더라도 대부분 당신을 위해 기도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교회 내에서 말이 갖는 양면성과 긴장을 이해하시고 함께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저부터 더 조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