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불편한 설교와 글 속에서 하나님과 저를 봅니다.



설교를 듣거나 글을 읽을 때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크게는 두 가지 였습니다. ‘사실을 잘 모르면서 야단치는 느낌이 들 때든지’, 아니면 다 맞는 이야기지만 내가 그렇게 못하는 부분을 건드릴 때입니다. 분명한 것은 어찌되었든 불편함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번 명절을 지나면서 이런 불편함이 제게 필요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번 명절에도 두 번의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첫 번째 불편함은 수요기도회 때 설교에서 였습니다. 이번 수요일 날에는 외부에서 오신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본문은 요한복음 51-18절 말씀을 가지고 은혜의 집 베데스다라는 제목의 설교였습니다. 조금 불편했습니다. ^^;아마도 전자 후자 다 포함되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 그렇지만, 한 가지 말씀을 불편함중에도 꼭 잡기로 했습니다. “교회가 은혜를 이야기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경쟁으로 바뀌더라이 한 말씀 붙잡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는 지나친 가난과 부에서 벗어나기라는 김동호 목사님의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이었습니다. 지면상 홈페이지에 올려 놓을테니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는 불편함을 넘어 살포시 화가 났습니다. ㅎㅎ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사실 그냥 싫은 겁니다. 농담이고요. 그냥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목사님이 너무 잘 나서 그런 것이고 또 하나는 목사님과 제가 처한 환경과 생각 자체가 많이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목사님이 제게 무슨 피해를 준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다름을 틀림으로 바꾸어 비난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읽으면서 이 불편함 속에 있는 김 목사님과 어떤 부분에서는 닮은(?) 제 자신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닮아서 불편할 때가 있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결코 이 분의 생각에 모두 동의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똑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편하지만 몇 가지는 분명 저나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약으로 삼키기로 했습니다. 글 내용은 제목처럼 자신의 가정의 가난 극복과 이제는 노욕과 싸움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제게는 그 제목보다 어떤 제목이든지 상관없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그 부분만 인용합니다.

 

"9.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만 가지고

스스로 독립하는 것이다. 자립하는 것이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기대지 않고.


10. 나는 가난과도 싸우지만 지나친 부와도 싸운다.

가난도 나를 부자유하게 하지만 돈도 지나치게 좋아하게 되면 그것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돈도 나를 부자유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난과도 싸우지만 지나친 부와도 싸운다.

나름 열심히 치열하게 싸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생활비보다 저축을 더 많이 하려 힘썼고,

지나친 부함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저축보다 헌금을 더 많이 하려고 힘썼다.

금전출납부를 써가면서까지.

오늘 너무 건방을 많이 떨었다.

그러나 이것이 내 진심이다. "

 

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추석 연휴로 인해서 지치기 쉬운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이기적이어도 됩니다. 그러나 믿음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목회자 세미나 앞두고 믿음이 없다면 좀 더 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파이팅 합시다!

 

 * 참고 글은 홈페이지에 있습니다. 



--------------------------------------------------------

참고 글 : 지나친 가난과 부에서 벗어나기

김동호 목사

 

1.

난 본시 가난한 사람이었다.

내가 자라난 시대는 나라가 전체적으로 다 가난한 때였으나

우리 집은 그 가난한 나라에서도 가난한 집에 속했었다.

자주 하는 이야기이지만 우리 아버지 월급으로는 쌀 한 가마 반을 살 수 있었다.

그것이 우리 집 수입의 전부였었다.

 

2.

그러나 우리 집은 기적같이 그 가난으로부터 탈출하였다.

우리 집 가난 탈출의 일등 공신은 내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시다.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큰 교회 목사가 되고, 유명 강사가 되고,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어서 가난 탈출에 성공한 줄 안다.

 

아니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우리 집은 내가 그렇게 되기 이전에 벌써 가난 탈출에 성공했었다.

지독히 가난했던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스스로의 힘으로 말이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지독한 가난을 물려주시지 않으셨다.

집을 한 채 유산으로 상속해 주셨다.

비록 그 규모가 작아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될 만한 재산이었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자기 집을 소유한 사람은 이미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다.

집을 소유하게 된 그때부터 우리는 서서히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어떻게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집을 살 수 있었는지가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집을 사신 것을 세계 8대 불가사이라고 생각한다.

 

3.

도대체 그 초인적인 힘과 능력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어떻게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셨을까?

 

첫째 자식 사랑이다.

우리 부모는 하나 밖에 없는 당신들의 자식인 나에게 최소한 당신들이 격고 살았던 가난을 유산으로 물려 주고 싶지 않으셨다. 모든 부모들이 거의 다 그러시지만 모든 부모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둘째 절약과 저축이다.

세상에 한 달에 쌀 한 가마 반 정도의 수입을 가지고 생활하시면서 어떻게 저축을 하실 수 있으셨을까? 우리 부모는 당신들이 사셔야 할 가난보다 더한 가난을 스스로 선택하셨다. 정말 마른 수건을 짜는 것과 같은 삶을 사셨다.

 

(당신들이 사셔야만 할 가난 - 스스로 결단하고 선택한 그 보다 더 극심한 가난 = 저축할 정말 쥐 꼬리보다도 작은 저축할 여유) + 오랜 시간 = 성공적인 가난 탈출.

 

난 그래서

한 달에 쌀 한 가마 반 이하의 수입을 가진 사람들이 저축 못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한 달에 쌀 한 가마 반 이상의 수입을 가진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저축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셋째 자립 정신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내겠다는 정신이 우리 부모에겐 참 강하셨다.

우리 외갓집은 부자셨다.

그런데 그 분들은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깔보지 않으셨다.

어떻게 하든지 도와주려고 하셨고 실제로 큰 도움을 주셨다.

그것이 우리가 가난을 벗어나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하든지 친정 도움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려고 하는 정신이 참 강하신 분이셨다. 난 그 정신이 없었다면 우리 외갓집이 아무리 우리를 도와주셨어도 밑빠진 독에 물 붇기 식이 되어 절대로 우리가 가난헤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참 건방지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난 세상에 벗어날 수 없는 절대빈곤은 없다고 생각한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물론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게임은 아니다.

절대로 불가능한 게임은 아니다.

 

5.

난 우리 집의 가난 탈출에도 관심이 많지만

다른 사람들의 가난 탈출에도 관심이 많다.

지금 나의 주 사역은 바로 그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가난 탈출을 도와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난 저들이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의 정신과 삶을 가르쳐 주고 싶다. 가난 탈출 게임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

 

그리고 말로만 가르치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외갓집이 우리를 도왔듯이 실질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지랫대를 제공해 주고 싶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생각처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집이 그 증인이기 때문이다.

 

6.

우리 아내도 절약하고 저축을 열심히 하는 면에서 우리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난 큰 교회 목사로 생활비도 많이 받고,

유명 강사로 강사비도 제법 많이 받았었고,

책 인세로 받은 돈도 엄청 많다.

물론 그와 같은 요인들이 나를 가난하지 않게 한 큰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양심적으로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것들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안정적인 삶과 생활의 일등 공신은 아니다. 하나님을 빼고 이야기하라면 그 일등 공신은 우리 아내다. 우리 아내의 절약과 저축이다.

 

7.

그러나 무조건 저축만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저축만 하고 살려고 했으면 우린 아마 큰 부자가 됬을꺼다.

우리 집 저축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그건 은퇴 후 경제적 자립이다.

은퇴 후 교회에 폐 끼치지 않고

늙어서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경제적 자립이 목표였다.

 

그 이상의 욕심은 없었다. (물론 욕심도 만만한건 아니었지만)

 

생활비보다 저축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지출의 일등은 저축이 아니었다.

저축보다 훨씬 많은 헌금을 하면 살았다.

금전 출납부를 10년이나 쓰면서 연습했고 또 그것을 무너트리지 않으려고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생활비 + 저축) = 헌금

(생활비 + 저축) 5 / 헌금 5.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이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필요 이상으로 저축하고 축재하려고는 하지 않았지만

필요한만큼은 저축하여 모으려고 힘썼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게 가능해졌다.

 

8.

가난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가난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가난이 불행이기 때문은 아니다.

건방진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난 가난했었을 때 불행하지 않았다.

나는 행복해 지기 위하여 가난과 싸우지는 않는다.

 

행복은 절대로 부함이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은 내가 누리고 있는 부함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조금은 부함이 주는 만족과 행복이 있다.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나름 치열하게 싸우는 첫째 이유는 가난에 사로잡혀 가난의 포로로 사는게 싫기 때문이다. 그건 비단 가난만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 외에 세상 그 어떤 곳에도 구속되기 싫다. 억압받기 싫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리고 누구든.

 

나를 억압하고

지배하려고 한다면 난 죽을 힘을 다해 벗어나려고 할꺼다.

그것과 싸울꺼다.

죽기 살기로.

그리고 난 그게 하나님이 원하고 바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싸우려고 작정하고 나서면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듯 이길 힘과 방법을 주신다고 나는 믿는다.

 

다시 가난해 지기는 쉽지 않겠지만

만일 내가 다시 가난해 진다면 난 또 그 가난과 싸울꺼다.

호락 호락 그 가난에 무너지지는 않을꺼다.

난 만일 은퇴 후 연금이 무너져서 생활이 막막하게 되면 정말 지하철 택배라도 작정이다.

한 달의 몇 십만원이라도 벌꺼고, 그 몇 십만원의 돈도 아끼고 절약하여 저축할 것이다.

우리 부모가 그러셨듯이 나도 거의 틀림없이 정면 도전하여 시간이 아무리 걸리더라도 그 가난에서 벗어날꺼다. 혹시 시간이 부족하여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여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발버둥질 칠꺼다.

 

9.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만 가지고

스스로 독립하는 것이다.

자립하는 것이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기대지 않고.

 

우리 부모는 우리 부자 친척의 도움을 받았지만

어떻게 하든지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드디어 도움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난 은퇴해도

늙어도

자립하고 싶다.

교회와 세상과 자식들에게 폐끼치며 기대살고 싶지 않다.

 

그 이상의 부는 욕심내지 않는다.

아니 욕심내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싸운다.

 

10.

나는 가난과도 싸우지만

지나친 부와도 싸운다.

가난도 나를 부자유하게 하지만

돈도 지나치게 좋아하게 되면 그것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돈도 나를 부자유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난과도 싸우지만 지나친 부와도 싸운다.

나름 열심히 치열하게 싸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생활비보다 저축을 더 많이 하려 힘썼고,

지나친 부함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저축보다 헌금을 더 많이 하려고 힘썼다.

금전출납부를 써가면서까지.

 

오늘 너무 건방을 많이 떨었다.

그러나 이것이 내 진심이다.

제목 날짜
제 270차 목회자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 등록 안내문 2022.09.16
목회칼럼은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단 댓글은 실명(로그인)으로만 쓸수 있습니다. 2020.06.19
지금은 의지적으로라도 한 걸음만 더!   2016.11.18
이상한 목장을 정상적인 목장으로 세웁니다.   2016.11.11
다운공동체 추수감사절 역사   2016.11.05
세례 숫자를 묻는 이유   2016.10.28
전도가 아니고 섬김입니다.   2016.10.22
보는 것처럼 쉬운 거 아닙니다.   2016.10.15
‘세미나 끝나자 말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2016.10.07
평신도세미나 7번, 목회자 세미나 4번!   2016.09.22
불편한 설교와 글 속에서 하나님과 저를 봅니다.   2016.09.17
김영란법과 우리 공동체의 선물 문화 (박종국 목사)   2016.09.10
건축이야기 4: 이삭줍기헌금 1차 마감 및 향후 일정   2016.09.02
‘특새’와 ‘삶 공부’의 파도를 탑시다.   2016.08.26
하나의 스피릿으로 가는 공동체   2016.08.20
가깝지만 잘 몰랐던 나라를 다녀와서   2016.08.13
파워틴 수련회/예쁜아이, GMK여름성경학교 (필립박전도사/양순안전도사)   2016.08.06
포기해서는 안되는 싸움   2016.07.30
저는 다운공동체 리더입니다.   2016.07.22
언제 들어도 감동적인 이야기(휴스턴에서)   2016.07.14
목회서신 7 함께 건강한 공동체에서 성숙한 공동체로 넘어갑시다. (1)   2016.07.09
부흥회에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201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