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고난 주간을 보내며 공동체에 드리는 감사
2002년 담임목회를 하기로 헌신을 한 후, 당시 제가 경험한 교회들을 생각해 보면서, 분명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닌데, 뭔가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친 듯이 교회들을 리서치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더 성경적이고 건강한 믿음과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지난 22년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교회를 보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최근에 했습니다.
20년 전, 좋은 교회라고 소문난 교회를 가보면, 실상은 ‘자아실현’을 잘 시켜주는 교회였습니다. 그런 교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건물은 백화점처럼 편리하게 지어져 있었고, 프로그램을 보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당신을 도와 줄 테니 와서 누리기만 하십시오라고 광고하는 듯 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는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셨던 교회일까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런 외적인 것과 상관없이, 좀 더 성경적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키워드를 발견했는데, 여러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은 “희생”이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고 알면서도 사용하듯, 제자도에 대해서 신학교에서 배웠든지 아니면 정말 성경을 보고 스스로 깨달았든지, 두 가지는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자기 부인”과 “대가 지불”이라고, 저 두 가지를 합친 것이 저는 “희생”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고난 주간을 기념하는 이유도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희생” 때문입니다.
희생이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여러 가지 말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섬김” “헌신” “순종” 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희생하는 사람의 모습은 '상황적으로는' 분명 힘들지만, 그 상황을 조정하여 주님께서 자신을 필요로 할 때, 시간과 물질 또는 자신이 가진 것을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한국교회가 언제부턴가 이것이 사라지면서 힘을 잃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나마 가정교회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것을 붙잡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적어도 한 가지 확신하게 된 것은 희생이 없는 신앙생활은 취미생활이라는 사실입니다.
평신도 세미나 신청을 받았습니다. PC방에 가서 컴퓨터에 능한 젊은이들이나 교역자들을 동원했음에도 40초 만에 끝나버리더라는 분부터, 실제 기록상으로는 1분 만에 40명이 마감이 되어버렸습니다. 몽골 평신도들을 위해서 10개의 자리를 남겨두었음에도, 그 이후에 제 전화기와 카톡이 불이 났습니다. 그 인원이 40명이 넘어갔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으니 문자나 톡으로 사연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그 중에는 애교섞인 읍소도 있지만, 분명 너무나도 절박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도 타이밍이 있듯이, 목회도 타이밍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굳이 휴스턴까지 가는 이유가 있듯이 어떤 목사님들에게는 다운공동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이유를 가진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고난 주간을 지내면서, 한 분 한 분, 인간적으로는 쉽지 않은 상황을 조정해서 집을 오픈하겠다고 희생해 주는 목자들 덕분에 최종 80명을 섬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더 귀하게 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이번에 집을 오픈하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조정해서 희생해 보려고 기도하고 고민했다는 것 자체가 믿음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사역 “바라(BARA)”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삶을 재조정하고 재창조하는 피조물의 반응, 즉, “아바드(AVAD)”의 삶을 우리 다운가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삶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희생이라는 이름의 “아바드”의 삶을 만들어 가는 다운 가족들의 흔적을 나눠봅니다.
“어제 저녁기도회 끝나고 집 오픈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평세 때 집 오픈 하겠습니다^^” “어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한번 해보지 않을래? 라는 마음을 주셔서 목녀와 마음을 모아서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을 경험해보고자 합니다.” “혹 잠만 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시면 연락 주시고요. 다음 세미나에서는 조정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오픈을 못할 것 같습니다. 다른 이유는 다 핑계고 제가 좀 많이 지쳐있습니다.” “새벽 일찍부터 움직여야 해서 오시는 손님을 케어 해 드릴 수 없어 그랬습니다. 방법을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가정 오픈을 하지 않게 된다면, 저희의 선택으로 인해 목원들도 평세의 은혜를 더 깊이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도 상황을 넘어 순종하며 섬기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어, 감사한 마음으로 섬겨보려고 합니다.” “목사님 구영리에는 숙소가 없어서 태화강 근처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방 하나에 침대가 두 개라서 두 분 숙박 가능하실 거 같습니다! 손님 방에서 두 분 주무시고 다른 방에서는 제가 숙박할 예정입니다!” “최근 평세에서 섬김받기도 했고 출산하면 다음 평세엔 어려울 것 같아서 오픈해보려고 합니다!” “저희가 교회 가까이 이사 계획 중에 일정이 조금 어긋나서 평세 기간에 단기 임대로 원룸에서 생활합니다. 저희도 목원 때부터 집 오픈을 정말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이러해서 신청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평세 때 꼭 일등으로 신청하겠습니다!” “301호에는 방 두 개+거실이 있습니다. 방 한 개는 퀸 사이즈 침대가 있어서 한 분이 취침이 가능해요”"저희 아이들도 어리고 집도 불편하고 차도 카시트 등으로 불편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우선 아내와 기도해보고 ...저희도 집 오픈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개방 안 하려는 마음으로 출발은 했으나 교회와 평세 신청자 그리고 영혼을 생각해 보니 개방하는 게 하나님의 뜻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