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15년 전 일기처럼 쓴 논문을 꺼내 보며
15년 전인 2011년도에 약 7년의 담임목회를 마치고 풀러 신학교에서 안식년을 보냈습니다. 그때 ‘교회성장학’ 수업 시간에 쓴 ‘다운공동체교회의 성장 원인 분석 및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썼습니다. 그 수업 자체가 자신이 목회한 교회를 분석하고 돌아가서 어떻게 목회할지를 연구해서 쓰는 것이었는데, 그 논문에서 제가 적은 글을 15년 만에 다시 꺼내 봅니다.
“개척적인 운동(개척자)은 결국 성숙하거나 없어져야 한다”
이 글은 톰 S. 레이너가 쓴, 교회성장교과서 (The Book of Church Growth)라는 책에 나오는 글귀인데, 당시 소논문을 준비하면서 교회 성장과 관련한 십수 권의 책을 읽었는데, 당시 이 글을 그 논문에서 인용하면서 제가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말은 내가 이 소논문을 위해 읽은 많은 책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읽은 부분이다. 그것은 지난 목회 과정에서도 가장 존경스러우면서도 가장 가슴 아팠던 경험을 이 문장에 녹여 놓았기 때문이다. 위의 문장에서 개척적인 운동이 어찌 운동뿐이겠는가?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개척자일 수 있다. 한국교회의 성장에만 있는 독특한 요소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교회 개척자들이다. 개척 목사, 개척 장로, 개척 멤버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 누구도 감히 해낼 수 없는 희생을 치르고 교회를 개척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열정과 시간과 특히 물질적 희생은 감히 엄두를 못 낼 것이다. 모든 개척교회에는 바로 이들의 피눈물 나는 희생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개척한 목사가 아닌 누군가의 이런 희생 위에서 세워진 기존 교회에 부임한 목사이기에 더욱 그들의 희생에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문제는 이러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아픔이 올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아픔은 개척 당사자들이 겪을 때도 있고 개척 이후에 교인이 된 사람들이 겪을 때도 있다. 그 아픔의 시점은 개척의 고통이 끝나고 성장의 열매를 거둘 때이거나 어떤 식으로든지 전환을 맞이했을 때이다. 새로운 목회자가 부임하거나 개척자가 은퇴할 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아픔의 원인도 대부분 나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개척정신을 살려서 좀 더 잘되어야 한다는 열정이나, 다시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과 염려에서 비롯된다. 개척자로서 충분히 자격 있는 문제 제기이고 행동이다. 때로는 거기까지 오는 동안 너무 에너지를 쏟은 나머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 탈진해서 그럴 때도 있다. 그런 경우엔 탈진을 잘 인정하지 않아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는 변화에서 소외되는 섭섭함에서 발생할 수도 있고, 드문 경우지만, 희생을 인정받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새로 부임한 목회자가 미성숙해서 일방적으로 아픔을 주는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식의 아픔 때문에 공동체 안에 문제가 일어나며 그로 인해 성장의 기회를 발목 잡힌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인정하기만 해도 상황은 많이 달라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끊임없이 대두되는 것이 원로목사의 문제이고 개척 멤버들의 문제이다. 개척자들이 들으면 또 한 번 마음 아픈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어떤 학문적인 글에도 나오지 않는 이 문제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이 부분에서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해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사탄에게 내어 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래된 교인 또는 기신자라는 이름의 또 다른 개척자들:
저 글을 쓰고 15년이 지난 지금 다운공동체교회에는 개척 멤버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적인 교회의 존재 목적을 만났고, 유별날 정도로 문제 의식을 가졌던 3대 목사로 인해 성경적인 리더십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는, 36년 전 목회자 한 가정과 평신도 한 가정이 개척에 참여했는데, 1대 담임목사님은 자신의 신념을 따라 일찍 또 다시 개척해 나갔고, 장로님 가정은 2021년 파송 개척을 통해 계속해서 개척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보기 드물게 ‘없어지는 선택'이 아닌 ‘성숙’을 향해 베드로처럼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간 사도행전적 모습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개척자는 언제나 출현합니다. 한 예로 지금 구영리 예배당 때부터 다운공동체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그 이전의 무거동 예배당에서의 교인들이 개척자일 수 있습니다. 꼭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 누군가 앞서 희생했기에 지금의 건강한 공동체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뒤에 온 사람들은 그들의 희생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생색이나 기득권으로 나타난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끝까지 깨어 있길 부탁합니다.
그 다음으로 기신자입니다. 저도 기신자이니 혹 기신자인 분들 너무 맘 상하지 않길 바랍니다. 건강한 교회 문화를 만들이 위함입니다. 기신자들이 무슨 개척 멤버인가 하실 수 있지만, 기신자가 힘든 이유는 늘 말씀드리지만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경험이 주는 고정관념이나 상처로 인한 선입견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개척 멤버와 비슷한 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는 기신자들이 어려움을 줄 만큼 영향을 끼치진 않지만, 대부분 교회의 갈등 뒤에는 기신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역시 36년 역사 속에서 초기 이단성 운동에 빠진 것 이후, 가장 큰 위기는 기신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기준으로 ‘교회는 이래야 해’라는 그들만의 좋은 의도(?)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시간적으로는 이미 다운 가족이 되었지만, 다운공동체의 정신이나 문화보다 과거에 다녔던 교회나 선교 단체에서 받은 그 은혜나 경험이라는 기신자의 마음과 태도를 내려놓지 못해 더이상 신앙도 리더십도 자라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 기신자를 안 받으면 되지 않나 하시겠지만, 인생에는 늘 예외가 있기 마련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깨닫는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맡긴 분들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 교회가 아니면 회복이 어려운 분들이 분명 있어보입니다. 무엇보다 코로나 전후로 오랜 시간 교회를 떠났던 분들이 요즘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것은 우연은 아닌 듯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두 번째 기회라는 이름의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어렵게 왔지만, 정착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근 ‘기존 신자 허입을 위한 약속 카드’라는 것을 만들어서 생삶을 마친 기신자들에게 약속을 받고 목장을 탐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싱글의 경우는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직장이나 학업으로 인해 타지역에서 오면 생삶 이전에 목장을 탐방하도록 했는데,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오래전에 타 교회에 오신 분들도 한번 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