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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저희 가족이 두동에 이사 온 것은 첫 안식년을 가기 직전인 20117월 이었습니다. 13년이 지났습니다. 두동의 역사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100년이 지난 은편교회를 시작으로 순교자를 낸 월평교회를 비롯, 면 단위임에도 역사가 오래된 교회가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두동성산교회입니다.

 

그 교회 하나 하나가 그냥 세워진 교회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로 세워졌습니다. 두동 성산교회 소개에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935~1948: 서윤자씨가 전도를 받고 산길로 4km 떨어진 월평교회로 출석하며 두동에 교회 세워지길 간절히 열망하며 기도하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자신의 마을에도 교회가 세워지길 기도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 정도 거리면 이웃 마을교회를 다니면 될텐데라고 말할 수 있지만, 농경사회에서는 마을마다 애들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이야 집집마다 차가 있지만, 당시로는 이웃 마을의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우상이 남발하던 시대에 마을에 교회당이 하나 세워진다는 것은 지금과는 다른 큰 영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교회당은 대부분 마을 한 가운데 있든지 그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성산교회당도 마을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끔 산책을 하다가 멀리서 보면, 유럽의 어느 동네를 보는 듯 합니다. 문득 이 시대에는 가정교회나 목장이 하나 세워지는 의미가 이런 간절함과 절실함의 발로이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 두동성산교회를 휴가 중에 수요기도회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의 안식년이나 휴가의 의미는 '본 교회를 떠나 보는데' 있기에 올 휴가는 대부분 울산에 머물지만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성산교회를 가게 된 이유는 수요일 아침에 아내와 늘 가던 산책길을 따라 가던 중에 밭일을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를 만나 말을 걸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89세의 김형구 할아버지와 80세 최명순 할머니였습니다. 해방되던 해, 10살의 나이에 일본에서 고향인 두동으로 와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최명순 할머니와 가정을 이루어 6남매를 키우며 자수성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결코 예사롭지 않은 우리네 부모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 중에 딸이 미국에 있는데, 교회를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따님이 미국 있을 때 꼭 미국에 할머니랑 한번 다녀오시라는 이야기를 신신 당부했습니다. 두 가지, 평생을 땅만 보고 사신 두 분이 천국은 아니어도 천국 조금 밑에 있는 듯한 넓고 좋은 세상 한번 보시길 진심 바랬습니다. 두 분의 건강상태는 그 정도 여행을 하시기에 충분했습니다. 또 하나는 처음에 이 분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예수 믿는 딸네 집에 가면 복음에 대해 들을 기회라도 생기지 않겠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문득, 그 딸이 목녀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스쳤습니다. ^^;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 저 아래 교회 있던데 교회 다니세요." 라고 권했더니, 옆에서 듣고만 계시던 할머니가 저 아래 두동성산교회를 다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목사임을 밝히자 그때부터는 그냥 오래된  가족인 냥, 이야기가 깊어졌습니다. 영적 가족의 특권이겠지요. 할아버지의 지나간 목사님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귀여운 흉(?)부터, 그래도 지금 담임목사님은 참 열심히 한다는 현역에 대한 칭찬까지, 저를 향해서는, '목사님 살 빼야 한다는 디스까지 ㅎㅎ', 그리고 이제 15명 남짓 남은 교회에 대한 리더로서의 부담까지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89세임에도 교회 재정을 맡고계신 집사님이셨고,(나이는 숫자임을, 정말 총기가 대단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은퇴 권사님이셨습니다. 권사님은 여느 어머니들 처럼 좋은 점만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꼭 교회에 한번 오라고 초청을 하셨습니다. 덜컥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나니, 오늘 저녁이 아니고서는 언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몰라 수요기도회에 아내, 아들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고향 교회에 온 느낌부터, 시내로부터 고작 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평균나이 80이 넘은 교회가 있다는 불일치의 감정까지, 갑자기 나타난 새파란(?) 젊은 사람이 얼마나 반가웠든지 마치고도 로비에 둘러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좌담회를 했습니다. 30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다닐 때, 유럽교회를 가면, 하얀 머리 할머니들이 오랜만에 보는 젊은이가 하도 반가워서인지 한 사람씩 인터뷰(?)를 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이날 할머니 중에 67세 시무 권사님 한 분과 70대 권사님 빼고는 모두가 80이 넘은 권사님이셨습니다. 제일 연장자 할머니는 94세 우영혜 권사님!, 이분이 제일 건강해 보였고 단아해 보였습니다. 이분들이 지금은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부터 교회 청소까지 모든 사역을 감당하고 계셨습니다.

 

지면상 이 정도에서 글을 맺겠습니다만, 감사한 것은, 이 동네에 이사 온지 13년 만에 원주민 이웃을 사귀게 되었다는 것, 은퇴하면 편하게 갈 수 있는 마을교회를 알게 되었다는 것, 동시에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는 교회학교가 생겨야 한다'는 김기환 담임목사님의 소망이 담긴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휴가 선물로 주신 가장 큰 메시지는 교회가 부흥했을 때도, 마치 바벨론 포로기를 보내는 이 시간에도 리더로서 일관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89세 청년 김형구 집사님의 모습과 여전히 교회 구석 구석을 섬기며, 기도의 자리를 꼿꼿하게 지키는 94세 우영혜 권사님 이하 소녀 같은 두동성산교회 할머니 권사님들의 예수님 닮은 모습은 앞으로 우리 교회가 붙잡아야 할 정신임을...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는 순종은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롭게 함을 다시 믿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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