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8월 출타에서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들
태풍이 지나간 뒤라 ‘하늘’이 마치 가을 하늘처럼 푸르고 높습니다. 이 여름이 지난 우리 교회의 미래가 이 하늘 같기를 기도해봅니다. 7월에 보낸 안식월 소식은 해외에 있어서 영상을 통해서 나누기도 했는데, 8월은 국내에 있어서 안식월을 마치고 20일 주일부터 칼럼을 쓰려고 하다가 그래도 이제 복귀를 한 주 남겨두고 소소한 이야기 몇 마디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글을 적습니다.
8월에도 ‘만남’을 가지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책과 만나고, 공동체와 만나고, 사람과 만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그때그때 생각나면 연락해 보고 형편이 되면 만나고, 형편이 안되면 못 만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겠지 생각하며 저 자신을 맡기고있습니다. 그중에서 공동체와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서 조금 나누겠습니다.
먼저, 공동체와의 만남입니다. 오산리 기도원 금요기도회도 참여하고, 분당우리교회와 향상교회 주일 예배도 드리고, 경주 경일교회와 최근 우리 동네에 예쁘게 세워진 ‘주안선교교회’ 수요기도회도 가보았습니다. 이 교회는 아마도 제가 은퇴하면 종종 가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 각각의 방문에서 든 느낀 점을 여기에서 모두 나눌 수는 없지만,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는 다른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 공동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직관적으로 다가온 생각은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신 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하고 판단하기보다는 우리는 우리가 붙잡기로 한 것을 잘살아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공동체든지 하나님의 공동체에는 ‘은혜’가 필요함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정영민 목사님 부부(LA포도원교회), 성병호 목사 가족, 신근욱 목사 가족, 김석홍 목사 부부, 성백영 목사님 부부, 곽우신 목사님 부부, 박성남 목사님 부부, 이왕재목사님부부 그리고 필립 전도사의 첫째인 예승이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나이대도 다르고 형편도 다른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면서, 역시 마찬가지로 그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볼 수 있는 유익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만이 아는 영역도 있지만, 많은 경우 자신을 정확하게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녀를 먼저 보낸 아픔 가운데서도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간 부부부터,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사위와 며느리와 맞추면서 손주를 보는 기쁨을 누리는 분들, 사춘기 자녀들과 부딪히며 자신도 목회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분들,,,그리고 예승이까지(우리 교회를 지나간 교역자 자녀들이 모두 잘 자라고 있어 감사하지만, 특히 예승이가 너무 잘 자라고 있어서 이번 안식월의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예승이는 원래 7번방의 선물^^;) 대부분의 만남에서 느낀 공통점은 그들이 ‘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섬기는 삶을 사는 분들일수록 행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 하시는 것도 섬김을 통한 행복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이번 출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은혜와 행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안식월 중에 주시고자 하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우리 다운 가족들이 이것을 더 많이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분명한 한 가지는 “균형 잡힌 시각”입니다.
지난 7월 미국에서의 안식월을 마무리하면서 휴스턴을 떠나기 전날 밤, 오랜 시간을 국제가정교회 사역원을 섬기고 계신 성승현 집사님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간적으로나 목회적으로 제가 배울 것이 많은 분입니다. 그때 말씀 중에 당신이 오랜 시간 많은 가정교회 평신도 리더들을 지켜보면서 그렇게 헌신적이었다가도 어느 순간 가정교회를 이탈하거나 공동체에 부담이나 아픔을 주는 리더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두 가지를 함께 보지 못하고 한쪽만 보는 경향(주로 자신의 기준으로 중요하다고 믿는 쪽)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 두 가지는 마음과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한 영혼을 향한 마음(눅15:7)’과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공교회에 대한 회복의 마음’(마6:33)이 그것입니다. 보통 평신도들은 전자에 대한 마음이 더 큽니다. 그래서 목회자에 대해서나 교회에 대해서도 사랑이나 구제 등을 요구합니다. 그것을 많이 하면 좋은 목회자이고 교회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없는 목회자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목회자들은 아무래도 후자에 대한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평신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보길 원하고 목회자적인 관점을 가지도록 훈련하고 도전합니다. 다행히 그것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소통, 신뢰, 역할 인식, 섬김 순종으로 동역하는 평신도 사역자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떠나든지 아니면 목회자와 교회를 바로잡기 위한 또 다른 사명자(?)가 되어 있습니다.
결국, 평신도가 건강하다는 것은, 이 두 가지 모두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쏠릴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을 깨닫습니다. 코로나처럼 큰 위기나 또는 갈등이나 고난을 겪으면, 조금 살아보니 나이가 들어도 사람은 자연스레 자기중심적이되고 방어적이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다시 균형을 찾기 위해 자신을 하나님과 타인의 기준으로 비추어보는 작업과 조율(조정보다는 자발적이고 아름다워서^^;)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통한 은혜와 섬김을 통한 행복이, 한 영혼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이 균형을 이루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추신: 이번 주일부터 주바울교회 전교인 수련회를 섬기는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이후 지난 안식월 가운데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후 복귀하고자 합니다. 끝까지 기도로 함께 해 주시길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