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가식도 하던대로도 아닌 의지적인 사랑으로!
이번 주 칼럼은 일주일 내내 머리로만 맴돌고 글로 쓰기가 참으로 어려운 내용이라 힘이 듭니다. 그럼에도 담임목사인 제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라는 책임감으로 나눕니다. 무엇보다 이것은 누구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에게 비춰진 우리 공동체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이번 칼럼이 우리 자신을 좀 더 돌아보고 성숙한 기회를 삼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돌려서 이야기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나누면 좋은데, 결국 글을 계속 고치게 됩니다. 조금 아픈 부분이 있어도 열린 맘으로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 최영기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신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꼭 최목사님이 아니어도 저는 목회를 잘하신 어른들이나 목사님들이 오시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우리 교인들이 은혜받는 것도 감사하지만, 사실은 제가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우리 교회를 밖에 있는 분들의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앞으로의 사역 방향과 관련된 중요한 것이라서 정리해서 다시 나누기로 하고,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 번째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과 관련된 메시지는 1부 예배 후, 최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왜 이렇게 조는 사람이 많지? ...”, “지난 번에도 반응이 너무 없어서 안 온다고 했는데..” 그 뒤에 말씀은 제가 차마 옮기지를 못하겠습니다. ^^; 이후 저의 궁색한 변명입니다. “목사님, 누군가 목사님과 저를 비교하기를 목사님은 아주 고급스러운 흑백 사진이고, 저는 칼라 사진이랍니다. 아마 이런 차이 때문에 우리 교인들의 태도가 그렇게 나왔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 설교 내용이 늘 제가 하던 이야기라서 그랬을 것입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부 때는 최목사님께서 의도적으로 “다운공동체는 이미 잘하고 있지만...”이라는 말씀을 반복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제 마음은 많이 죄송했습니다. 저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솔직하게 자수를 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최목사님도 결코 저희 교회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대가 크십니다. 또한 그날 우리 누구도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 잘 압니다. 그래서 쓰면서도 망설여지는 글입니다. 굳이 잘못이 있다면, 우리는 “가식과 의지적 사랑”의 차이를 몰랐을 뿐입니다. ‘늘 하던대로 한다는 말’과 ‘예의를 갖춘다“는 말의 차이를 몰랐을 뿐입니다. 그리고 담임목사인 제가 그렇게 가르쳐서 배운대로 한 것 뿐이기에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는 전제하에 이제 어려운 이야기 딱 세 가지만 나누겠습니다.
먼저, ”환영“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외부 강사가 올 때 영접이나 접대하는 팀이 있지는 않습니다. 굳이 있다면 사역을 주관하는 팀에서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직접 호텔에 가서 모셔오는 것이 예의일 듯 하여 모시고 왔습니다. 아마도 제가 가지 않았더라면 그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 날 주차장에서의 저의 모습은 트렁크에 있는 강사님 가방과 뒷 자석의 제 가방도 챙겨야 했고, 트렁크 문과 차 문도 닫아야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강사로 오신 최목사님은 민망하게 저를 기다려야 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연출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차 키를 챙기는 것을 잊어버려서 돌아가실 때는 키를 찾느라 또 우왕좌왕했습니다. 주위에 있던 한분 만이라도, 또한 현장에 있던 사역부원이 저를 좀 도와서 짐도 받아주고 강사님과 저를 엘리베이트까지 안내를 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고, 당일 공석 중인 주차사역부 사역지기를 도와 사역하기로 한 중직자 두 분이 나오지 않은 것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두 번째는 ”인사“입니다. 엘리베이트를 탔는데, 우리 교인들이 좀 더 인사를 살갑게 해 주면 좋았겠다 싶었는데, 마스크 때문에 누군지 몰라서이기도하고, 어려워서이기도 해서인지,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실 무거동에 있을 때에 우리 교회에 대한 가장 큰 평가 중의 하나는 교인들이 밝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인사를 잘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소리는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인사를 잘 안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목사인 제가 보면 어른들도 친한 사람들끼리는 인사를 잘하는데, 자신의 초원지기가 아닌 장로님들께나 담임목사인 저에게도 꼭 해야 할 인사를 하지 않는 안타까운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역자 회의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인사하는 것부터 가르치라고 당부도 했습니다. 또한 젊은 목자들에게도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는 것은 가식이 아니라 그것이 리더의 자질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이번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아울러 엘리베이터에 외부 강사가 있을 경우, 기다렸다가 다음 번에 타는 배려가 우리에게 필요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예배 시간의 ”표정“ 또는 ”반응“에 대한 말씀입니다. 다운공동체교회가 참 밝았는데, 표정이 어둡고 반응이 너무 없다며 아쉬워하셨습니다. 이것은 사실 담임목사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크기 때문에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못 느끼는 부분일 수 있으니 이런 기회에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길 부탁합니다. 우리는 늘 하던대로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 비춰보면 그것은 가식이 아닌 의지적 사랑입니다. 살다보면, 좀 더 의지적인 사랑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안내팀의 표정과 태도, 찬양팀의 표정과 소리, 음향팀의 준비와 집중! 그리고 청중들의 반응이 결코 인간을 향한 가식이 아니라, 더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의지적인 섬김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는 분명 하나님께도 드리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우리의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VIP나 믿음이 약한 분들은 결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를 처음부터 느끼지 못합니다. 그들은 먼저 믿은 사람들의 태도와 표정과 반응을 통해서 나도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을 믿고 싶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칭찬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가끔 한번씩은 우리 자신을 다른 누군가의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이 그런 기회였다고 봅니다. 떠나시면서 마지막 하신 말씀 ”주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박목사를 도와줄 사람을 세워(보내)달라고 기도해“ 라는 말씀이 귀에 남습니다. 여러분 중의 누군가 그 사람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