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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가정교회, 마을교회, 세상 속 교회 2

Family Church, Village Church, Missional Church

(목회서신 12: 구영리 시대의 다운공동체)

 

 

 

1. 큰 그림과 아름다운 그림

 

2. 구영리 시대 다운공동체가 나아갈 방향

 

1) 가정교회: Family Church

“ONE MESSAGE ALL GENERATIONS:

한 말씀으로 모든 세대를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교회

목장(), 성경공부(), 주일 예배() 의 균형

신뢰(소통), 순종(역할인식), 섬김(희생)의 리더십

말씀이 작동하는 교회, 삶을 통해 보고 배우는 공동체, 부리기 쉬운 종

괜찮은 이웃, 정직에 도전하는 공동체’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교회

자연스러운 영성, 생활화된 헌신’, ‘목사 같은 평신도, 평신도 같은 목사

“‘당연한 것과 만만함이 상식이 되는 교회, ‘충격을 주는 공동체

 

2) 마을교회: Village Church,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토요일 마을 단위로 아이들이 그 마을에 있는 어른 교우들 집을 돌아가면서 모이는 목장

토요마을교회: 어린이-오전 103012/ 파워틴-오후(시간 추후 공지)

 

* 주일예배 및 사역

(1) 모리아산 예배: 945, 어린이, 파워틴, 교사(예쁜 아이), 부모님들이 함께 하는 예배

영아부 예배: 1115-1140(영아부 교사1,2부 나누어서) 예쁜 아이예배: 1145-1

어린이, 파워틴 교회학교 성경공부 모임 : 11301230

 

(2) 쥬빌리 예배: 1145, 싱글과 장년, 교사(영아부)들이 함께 하는 예배

성찬식 및 가족큐티예배(점심): 매월 첫째 주일

 

(3) 온 세대 (ALL GENERATIONS) 예배: 절기 시 주일 오전 11

 

● 주일 삶 공부: 오후 230* 주중 삶 공부: 화요일

● 주일 모임: 교사모임-첫째 주, 총목자모임-둘째 주, 초원모임: 셋째 주

● 미셔널 처지 사역: 매월 넷째 주 또는 다섯째 주

 

3) 세상 속 교회: Missional Church

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지난 주에 이어서 구영리 시대의 다운공동체에 대한 그림을 계속 그려보겠습니다. 세 번째로 세상 속 교회(Missional Church, 미셔널 처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어의 정의부터 이야기 하겠습니다. 세상 속 교회라고 한글 제목을 붙였지만 영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선교적 교회라는 말입니다. ‘선교라는 말은 익숙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교적 교회란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대부분의 교회는 선교적 교회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선교적 교회를 고유명사처럼 사용하게 되었을까요? 미셔널 처치, 또는 선교적 교회라는 개념이 기독교계에 처음 등장한 것은 30여 년간의 인도선교를 마치고 본국에 돌아온 레슬리 뉴비긴이라는 영국선교사에 의해서입니다. 당시 70년대 영국의 영적상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국이 더 이상 선교사 파송국이 아니라 오히려 인도처럼 선교가 필요한 선교지로 변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웅장했던 교회는 텅텅 비어가고 술집과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어 가는 영국을 바라보며 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뉴비긴의 이런 선교신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비슷한 현실 가운데 있는 북미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고 오랜 연구 끝에 미셔널 처치라는 용어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북미에선 그들이 더 이상 선교를 주도하는 기독교 중심국가가 아니라복음에 의해 다시 변해야 하는 선교현장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2011년 안식년 때 풀러 신학교에서 이런 의미에서의 선교적 교회를 처음 접했습니다. 이후 마음에 담아두면서 고민도 하고 짬짬히 공부도 하다가 오늘 조금씩 여러분과 나누고 있습니다. 사실 선교적 교회라는 의미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가지 정의를 나누어 봅니다.

 

미셔널 처지(Missional Church, 선교적 교회)는 제도화되고 고착되어 버린 오늘의 교회를 선교적으로 새롭게 재검토하고 재구성해야 한다는 각성에 의해 생겨난 개념으로, 성경에 나타난 본질적인 교회의 가치를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 구현하고자 한다. 여기에서의 선교는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국내외 여러 기관에 선교비를 보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셔널 처지에서는 물질과 시간으로 서포트하는 선교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선교적 사명'을 위임받은 선교적 주체임을 강조하면서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미셔널 처지, 최동규 교수 저, 대한기독교서회)

 

선교적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선교사적 정체성을 가지고 (거시적 측면에서) 하나님의 나라 회복을 위해 세상을 섬기며, (미시적 측면에서) 잃어버린 영혼들의 전인적 구원을 위해 세상으로 보냄 받은 선교적 공동체를 의미한다. 선교적 공동체의 관심은 세상에 있다. 이들은 일차적으로는 지역사회 내에서, 그리고 동시에 세계를 품고 섬기는 사역을 추구한다.”(처치 시프트-선교적 교회 사역 패러다임, 이상훈 저, 워십리더미디어)

 

미셔널 처치라는 용어가 생겨난 본래 의미에 가장 근접하게 표현한다면 선교적 교회 혹은보냄 받은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미셔널 처치는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아 보냄을 받은 백성으로서, 교회의 본질적 특성과 소명을 강조합니다. 교회는 단순히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는 기관이 아니라 교회 자신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파송하신 선교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021절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보냄 받은 것, 즉 선교는 교회의 본질인 것입니다.” (전상출 목사, 분당우리교회 홈페이지)

 

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이 외에도 많은 정의가 있지만 크게 위 3가지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 교회가 구영리 시대에 감당할 수 있고, 감당하기에는 버겁지만 그 위치에서 책임져야 할 선교적 교회로서의 몫이 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담임목사로서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다운공동체 미셔널 처치는 우리가 아닌 세상이 중심인 교회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예배당과 주일을 중심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우리에게로 오라는 방식으로 주님의 일을 해왔습니다. 물론 교회는 모이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세상 속으로 흩어지는 교회, 보냄 받은 교회로서의 사명도 강조합니다.

 

그래서 가정교회가 집에서 주중에 모이는 것입니다. ‘주일날 예배당이 아닌’, ‘주중에 세상 속으로 흩어진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하면 불신자 이웃들이 예배당에 오는 것보다는 목장에 오는 것이 편하고 쉽기 때문입니다. 마을 교회 속에 있는 정신도 동일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가정교회나 마을교회도 선교적 교회입니다.

 

그런데 왜 미셔널 처치라는 이름을 별도로 사용하는가 하면, 가정교회나 마을교회는 여전히 우리 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나 마을 교회는 우리 교인들 집에, 우리 가까이 있는 이웃들을, 우리가 초청했을 때 찾아올 수 있는 이웃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우리에게 먼저 오게 한 후,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해서 영혼이 구원받고 주님의 제자가 되어 제자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셔널 처치는 우리가 중심이 아닌 세상이 중심이 되고 우리는 섬겨줍니다. 궁극적으로는 영혼구원과 제자의 삶을 목표로 하지만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고, 구원을 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다운공동체 미셔널 처치는 먼 세상 속 이웃을 찾아가는 침투적 교회입니다.

세상에는 정말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가 초청해도 올 수 없거나, 온다고 해도 개인이나 목장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지혜를 모아서 의지적으로, 침투적으로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영리 시대에 우리 교회는 그들을 매주는 아니어도 최소한 한 달에 한번 이라도 멀리 보고 꾸준하게 찾아가서 섬길 것입니다. 당장은 해외는 아니고 울산 지역과 한반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크레이그 반 겔더는 <하나님은 세상 가운데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하나님은 세상 가운데 무슨 일을 하고자 하시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교회가 성령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받아야 할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 두 질문이 구영리 다운공동체 가족들에게 늘 던져지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염규홍 목사와 싱글이 주축이 되어 이 질문에 대한 성경적이면서 우리 공동체가 해야 하고 감당할 수 있는 세상 속 사람들과 그들을 섬길 대안들을 찾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3. 다운공동체의 미래

이제 마지막으로 다운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사실 가장 부담이 되는 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미래를 이야기 했다가 유익을 본 경우보다는 손해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아무리 미래를 이야기해도 그 미래는 지금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막상 그 미래의 상황이 예측한 것과 다를 때는 오히려 지금 이야기한 미래에 발목이 잡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미래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계획의 몫은 인간이고 이루어 가실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계획을 세우는 차원에서 리더로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가볍게도 여겨서는 안 되지만 너무 확신으로도 받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계획은 세우지만 그때 그때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받아야하고, 무엇보다 계획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 계획이 주님의 소원인 영혼구원과 제자 삼는 일, 믿음이 계승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에 도움이 될 때 유효함을 미리 밝힙니다. 지난 2018년 말 정책 당회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어서 먼 미래의 큰 그림과 관련된 것만 두 가지만 나눕니다.

 

첫 번째는 성장과 분립에 대한 것입니다.

다운공동체교회가 지금의 이름을 갖기 전에 사용했던 이름은 다운교회였습니다. 그 의미는 교회다운 교회, 성도다운 성도였습니다. 여전히 이 정신은 유효하고 주님 오시는 그 날 까지 붙잡아야 할 정신입니다. 이것을 이루는 방법으로 지난 무거동 시대에 구체화 되고 삶이 되고 문화가 된 것이 있다면, ‘다운-down’ , 낮아짐(순종과 섬김)공동체-community’ , 목장(영적 가족)을 통해서 말씀을 적용하여 삶 속에서 제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다운공동체교회는 성숙도 했고 성장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렇게 되길 소망합니다.

 

문제는 어디까지 성장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닐 콜이라는 사람은 따뜻한 피가 도는 생명체는 대게 일정한 수준까지 성장했다가 번식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섭리이다’(오가닉 처치, 닐콜 저, 정성묵 역, 가나북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지적에 따르면 가장 번식을 하지 않는 생명체가 바로 교회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미국 교회들의 4%만 교회를 개척(번식)한다. 그러니까 기존 미국 교회들의 96%가 번식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맞는 통계다. 솔직히 이 4%도 대부분이 원치 않는 임신, 즉 교회 분열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번식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같은 책에서 밝힙니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일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 정책당회에서는 구영리에서의 다운공동체가 언제 어디쯤에서 생명을 낳을지를 브레이크 지점을 정했습니다. 회원교인 청장년 600, 다음세대 400명이 넘어가면 그때 분립이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데 도움이 되면, 최소 120-150명 단위의 형제 교회를 분립하는 것에 뜻을 모으고 순종하는 것을 교회의 미래의 큰 그림으로 잡았습니다. 또한 담임목사가 회원교인 600명 이상 목회를 하고 은퇴할 때는 은퇴 뒤 교회가 더 영혼구원의 사명에 집중하고 제자 삼는데 도움이 된다면 적정한 수준의 2-3개의 동시 분립을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은 이것을 절대화하지는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분립 자체가 교회의 존재목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소원인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입니다. 사람이 계획을 정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때 이 계획을 기뻐하시는지 늘 깨어 기도와 순종을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는 제도의 개선입니다.

제도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종종 제도에 묶여서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담임목사 신임에 대한 부분입니다. 앞으로 담임목사 부임 날짜를 기준으로 20년 미만 목회하게 될 목사는 6년 뒤 1번만 하기로 했습니다. 저의 경우처럼 20년 이상 목회를 하게 되는 담임목사는 2번만 신임투표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 역시 신임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목회자를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분별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장로를 선출을 할 때는 당회가 세대 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서리집사 제도의 경우도 교회가 조직이나 직분보다는 가족 공동체성을 지켜 내기 위해서 앞으로는 만 50세 이상 되시는 분들 가운데서 임명하기로 했습니다. 권사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남편이 믿는 분들 가운데서 후보가 되도록 했습니다. 제직회의 경우도 소모적인 회의를 줄이고 실제적인 의견을 모으고 책임감 있는 참여를 위해서 총회 법을 따라 장로, 권사, 안수집사들만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그 외에는 공동의회를 통해서 의견을 개진하고 의사 결정에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잘 다듬어서 내규를 만들도록 의견을 모았습니다.


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412, 3대 담임목사 청빙을 앞두고 열린 공동의회에서 설교 대신에 1장 짜리 목회에 대한 그림을 가지고 설명 한 후, 박목사가 다운교회 3대 목사로 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물었습니다. 안되기를 바랬는데 7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찬성을 해서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6년을 사역하고 20101219일 첫 번째 신임투표를 했습니다. 열정과 분노가 섞여 치 열하게 목회한 6년이었기 때문에 되겠나생각했는데 1명이 반대하고 모두가 계속해서 목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찬성을 해 주었습니다.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 감사를 뒤로 하고 2011년에 가진 안식년을 통해서 다운공동체교회의 성장원인 분석 및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라는 소논문을 들고 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글은 원인 분석에 중점을 둔 글이었지 목회 경험의 부족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방법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또한 현실이 그것을 받쳐주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7년이 지났습니다. 6년을 하고 신임투표를 해야 하지만, 건축으로 인해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째 2기 사역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구영리 입당과 신임투표를 앞두고 앞으로 목회 방향을 적었습니다. 첫 번째 소논문은 학교 도서관과 멀리 떨어진 LA의 월세 아파트에서 적었는데, 이 번 글은 마치 전투 중에 막사 안에서 글을 적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첫 번 째 소논문보다 더 생생하게 과거에 대한 분석보다는 미래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한 그림을 보여주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거기에는 전과 달리 넓은 예배당과 더 성숙한 다운 가족들과 리더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선택권은 여러분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저를 향한 당신의 결정권을 드러내실 줄 믿습니다. 몇 주 목회서신도 다시 읽어 보시고, 구영리 시대에도 다운공동체의 담임목사로서 박목사가 사역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진실되게 물어보시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겨지시면 찬성하시면 됩니다. 그동안 부족한 담임목사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죄 많은 저를 사랑하시고 여러분들을 만나게 해 주시고 다운공동체 교회 담임목사로서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3기 사역을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면,

굿바이, 광야!

구영리에서, 씨유 어게인!


교회사진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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