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보다 더 주님이 기뻐하시는 임직식 (2): 다운공동체 중직자의 정체성
보다 더 주님이 기뻐하시는 임직식 (2)
다운공동체 중직자의 정체성
이제 임직식이 일주일 남았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보다 더 주님이 기뻐하시는 임직식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지난 주에는 임직식 자체에 대한 글이라면 이번 주는 임직 받는 당사자들 즉 중직자(장로,안수집사,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다운공동체 중직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이제 임직 받는 분들의 정체성과 앞으로 중직자를 세울 때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 글의 앞부분은 제 글이고 뒷 부분은 은퇴한 선배 목사님의 글을 편집해서 마무리했음을 밝혀둡니다. 현재로서는 이보다 더 나은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다운공동체 중직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말하기 전에, ‘왜 중직자를 세워야 하는가?“하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하고 싶습니다. 사실 교회마다 중직자를 세울 때 약간의 잡음과 상처가 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세워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첫 번째는 ‘성경에서 주님이 사람을 세워서 일하셨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기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건물을 보면 기둥이 중요합니다. 기둥이 있어서 건물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둥은 대부분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중직자를 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기둥처럼 묵묵히 교회를 세우고 위기로부터 지켜 내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많은 것을 누군가로부터 보고 배웁니다. 그래서 우리도 본이 될 만한 사람을 세워서 보고 배우게 함입니다. 특히 중직자는 리더들 중에서도 섬김과 영적인 면에서 본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세 가지 이유가 제가 담임목사로서 중직자를 세우는 이유입니다. 이 세 가지만 봐도 분명 중직자가 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잘 하면 영광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러한 이유 위에서 저를 비롯하여 다운공동체 리더들을 향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끝까지 섬김과 영적인 본이 되어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는 그림입니다. (이제부터의 글은 제 글이 아닙니다. 2011년 2월에 쓴 최영기 목사님의 칼럼을 저희 교회 형편에 맞게 조금 편집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중직자라고 불리는 당회나 안수 집사회, 권사회가 교회 발전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중직자들이 교인들에게 존경의 대상보다는 빈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이 평신도 지도자로서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되고, 교인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로 머물러 있을 수가 있을까? 제가 평신도와 목회자로서 오랫동안 사역하면서 얻은 결론을, 교회 창립 기념일과 임직식을 맞아 여러분들과 나눕니다.
첫째로, 존경받는 중직자가 되려면 사역 현장에서 뛰어야합니다. 우리 교회 중직자들이 성도들에게 존경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현장에서 뛰기 때문입니다. 솔선수범하여 사역의 현장에서 궂은일을 마다않기 때문에 교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역 최전방에서 물러나서 남을 지도하는 역할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위기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말만 하고 몸을 아끼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존경을 잃습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사역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것이 낫습니다. 리더는 일할 때 리더입니다 .
둘째로, 동역자들의 기를 살려주어야 합니다. 지도자의 가장 큰 역할중의 하나는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것입니다. 동기부여는 인간의 기를 살려줄 때에 이루어집니다. 사람은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익숙지 못한 일을 접하게 되면 거부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런 성향은 나이가 들수록 더 커집니다. 나이 들은 후에도 존경 받는 중직자로 남아 있고 싶으면, 젊은이들이 열정을 갖고 무엇을 해보려고 할 때에 사소한 것을 문제 삼지 말고 적극적으로 밀어주어야합니다.
셋째로, 담임 목회자의 적극적인 협조자가 되어야합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담임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 간의 갈등 때문입니다. 갈등의 궁극적인 책임은 담임 목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담임 목사가 부족하더라도 성경에 명기되어 있는 죄를 짓지 않는 한 존중해주고, 100%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이라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면 목사는 점점 괜찮은 사람으로 변해가고 사역의 열매는 점점 커갑니다. 제 사역에 열매가 있었던 것은 우리 교회 중직자들이 이런 자세로 저를 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담임 목사의 실수나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을 사명으로 아는 중직자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를 비판하고 제동을 걸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목사와 가장 가까이서 동역하는 중직자들은 담임 목회자를 보호해 주고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평안 가운데 사역이 이루어지고 자신들은 존경 받는 지도자가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이 되려면 ‘소통을 통한 신뢰’ ‘역할인식을 통한 순종’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