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특별 칼럼: 사실 저는 지금 절박합니다.
최근 3월 27일자 인터넷에서 분당에서 목회하시는 “김병삼 목사, ‘부목사들에게 새벽기도 자유 선포했더니’”라는 제목의 글을 보았습니다.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그는 오래 전 후안 카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의 책에 심취했던 때가 있었는데 ‘기도가 당신에게 지루한 노동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라는 문장이 아주 강하게 다가왔었다며 ‘아마도 모든 크리스천이라면 ’기도‘에 대한 강박과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들어서 김목사는 “기도가 노동이 되지 않고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만나교회 목회자에게는 ‘새벽기 도 자율과 자유’를 선포했었다고 합니다. 목회자들에게 새벽에 나오는 시간이 강박이나 억압규율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하는 기쁨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는 것’, 그래서 새벽시간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그러면서 “어느 날 기도의 시간이 삶에서 기쁨과 필요, 그리고 갈급함이 되기까지는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다더라는 것‘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어제는 목회자들에게, 더 이상 새벽기도가 자율이 아닌 목회자로서의 ’의무감‘으로 참석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밤새 마음이 무거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줄 변명하시기를 “저도 젊은 시절 부목사도, 개척교회도, 시골 목회도 했고 때로 다른 목회자들의 눈치도 보고, 교인들의 이목도 있고, 자신에 대한 규율의 수단으로 새벽기도를 했던 것 같다”며 “새벽에 나와서 참 많이 졸았던 것 같고, 새벽에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울 때가 참 많았다‘고 회고 하면서 그럼에도 “그렇게 붙잡고 있었던 끈으로 인해,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절절하게 새벽에 기도했던 것 같다”며 “기도가 지루한 노동이 되지 않기 위해 ‘기도로부터의 자유’를 누리는 순간, 기도의 기쁨과 기대가 날아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후배목회자들에게 제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새벽을 사십시오!’로, 이는 꼭 시간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시간, 기도와 묵상과 사색, 그리고 목회의 준비에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말한다”며 어느 시간이나 가능하겠지만, 목회 패턴에서 보면 새벽처럼 좋은 시간이 없더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문 http://www.christiantoday.co.kr)
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제가 가끔 무슨 일을 하면서 꼭 필요하다고 확신하지만 슬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통계작업을 할 때입니다. 주일 출석 통계를 내 본다든지, 목회일기 통계를 내 본다든지 할 때입니다. 오늘도 그 슬픈 작업을 했습니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새벽기도와 수요기도회 통계를 내 보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 역시 위에 소개한 글을 쓴 목사님의 마음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저를 조금이나마 변명하고자 위 글을 먼저 나누었습니다. 이 말은 이 글을 쓰는 것이 결코 누구를 비난하거나 아프게 할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기도할 마음이 더 생기는 것도 아님을 압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을 조금 알고, 저의 절박한 심정을 좀 이해시키고자 함입니다. 지면상 간단한 특징만 좀 나누겠습니다.
1) 3월 새벽기도와 수요기도회는 총 26회였습니다. 그러나 4주를 기준으로 하고 새벽기도 20번, 수요기도회 4번, 총 24번을 기준으로 잡았습니다. 2번은 덤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통계에는 교역자부부, 장로, 안수집사, 권사, 목자(녀,부)만을 포함했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이 그룹에 들어가는 분들이 95명입니다. 45개 목장에 목자(녀,부) 86명, 목자를 하지 않는 교역자 부부와 권사님 9명입니다. 이 중에서 거의 매일 나오는 기도가 습관이 된 숫자에 해당하는 20번 이상은 교역자 4명과 평신도 사역자 중에서는 3명입니다. 7%를 차지합니다.
2) 장로 권사 안수집사를 중직자라고 하는데 군 선교에 나가 있는 분을 제외하면 18명입니다. 담임목사의 일방적인 생각이지만 주 3번의 새벽기도와 수요기도회를 나와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을 때, 16번 이상 참여에 해당되시는 분은 5명입니다. 27%입니다.
3) 목양에서 리더 중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초원지기 부부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9개 초원에 18명의 초원지기 부부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위와 같은 기준인 16번 이상 참석하신 분은 역시 5명입니다. 27% 입니다.
4) 이제 우리가 목자 서약할 때 최소 기준인 주중 2번과 새벽기도 한번을 기준으로 했을 때를 보겠습니다. 이렇게 할 경우 12번이 됩니다. 전체 리더 그룹 95명 중에서 24명만 이 기준에 들어갑니다. 24%에 해당됩니다. 76%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5) 한주 기준으로 했을 때 새벽기도나 수요기도회를 포함 최소 1번을 못 지키는 분들이 44%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정말 한 번도 새벽기도회를 못 나오신 분들이 30% 이상 입니다.
이 통계를 가지고 제가 분석한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참여율에서 건강한 공동체의 마지노선이라고 하는 30%의 비율을 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면에 불참이나 부정적인 부분에서의 통계는 모두 30%를 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되지 못하고 안하는 것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보여집니다.
2) 새벽기도 2번이나 3번의 기준에서는 중직자 그룹이나 초원지기 그룹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횟수보다 중요한 뭔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3) 초원지기의 기도회 참여비율이 높을수록 그 초원의 목자(녀,부)들의 총 새벽기도 참여수도 높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보고 배운다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목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목자 없어도 목원이 새벽을 깨우는 은혜로운 목장도 있습니다.
4) 예배 목장(최근4주 주일출석인원의 93%참석) 삶 공부(매년 주일 출석교인의 30-40% 참여)의 참여도에 비해서 가장 취약한 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이 기도라는 말도 됩니다.
사랑 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직장이나 건강으로 인한 새벽기도나 수요기도회를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은 결코 이 글로 인해서 맘 상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 상황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 목회자로서 여러분들이 느끼지 못하는 위기상황을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음을 이해하시고 글의 행간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이 공동체가 건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그 건강함이 누군가의 희생과 기도로 이루어져 왔는데 공동체 크기에 비해서 이제 그 기초가 약하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그것이야말로 위기 중의 위기입니다. 사실 저는 지금 절박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저 앉을 것인가? 아니면 계속 가나안을 향해서 행진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건강한 공동체를 지키고 싶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건강한 공동체를 물려주고 싶다면, 그리고 능력 이상으로 목회하느라고 정말 한계를 느끼는 담임목사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면, 일주일에 2일만 새벽기도든 수요기도회든 기도의 자리로 나와 주십시오. 저는 지금 참 절박합니다.
2017년 4월 9일 고난 주간을 앞두고 박종국 목사드림
추신: 4월30일까지 제 폰은 통화정지상태입니다. 연락은 교회전화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