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목회칼럼

 

요즈음 비전이라는 단어가 유행입니다. 그런데 주의 일을 할 때에는 비전이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식 못하는 것 같습니다. 휴스턴에 소재한 한 크지 않은 한인 교회에서 시작된 가정교회가 북미를 거쳐, 한국으로, 그리고 선교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가정교회 운동을 제2의 종교 개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제가 꿈과 비전을 갖고 가정교회를 시작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비전을 갖고 시작했으면 오늘날과 같은 가정교회나 가정교회 운동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나이 들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의 인생의 주인이라면 그분 뜻대로 사는 것은 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삶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41세 되던 해에 직장 생활을 접고 신학 공부를 하고 목사가 된 후에도 목회의 기준은 여전히 성경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신약 성경에 기록된 교회와 오늘날 교회 사이에 있는 큰 차이를 보며 갈등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휴스턴 서울교회에서 담임 목사 초청을 받게 되었을 때, 성경적인 교회를 해보라는 하나님의 초청으로 알고 가정교회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부임해서 10개월 후에 가정교회로 전환시켰습니다.

 

이때 신약교회 회복의 비전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목회 방법이나 서울 교회 모습을 성경과 비슷하게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대다 개헤엄이 배워진 것과 같이, 성경 하나 붙들고 몸부림치다가 생겨난 것이 오늘날의 가정교회입니다. 꿈과 비전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려 애썼던 결과입니다.(중략)

 

비전을 갖게 되면 자신이 계획하고, 능력 닿는 정도밖에 일을 못합니다. 주님께 부름 받아 쓰임 받으려면 비전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개발하고, 들려진 음성에 순종하는 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인간 능력의 한계를 넘어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

 

위 글은 "비전을 버려야" 라는 제목으로 지난 610일 가사원 홈페이지 원장코너에 올라온 글입니다. 글의 주제가 제 신앙과 사역에서도 전환점이 된 주제이기에 몇 번을 읽고 여러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시에는 이유가 있지만 제가 청소년기를 보낼 때 한국교회는 꿈, 비전, 영향력이라는 말이 유행을 했습니다. 설교마다 거의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저 역시 사역자가 되어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도 부르짖었던 주제입니다. 정말 성경적인가 물어보지도 않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꿈과 비전과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자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도망가듯 유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3년 반의 시간을 고민하면서 밴쿠버 유스 코스타 강사로 서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설교 제목이 꿈 꾸지 마라였습니다. 그 제목을 받은 주최 측에서 제목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물어 온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꿈꾸지 마라는 것만 부르짖고 비판만 했지 대안이 없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부리기 쉬운 종의 자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위 글을 쓴 목사님은 비판 대신에 부리기 쉬운 종으로 살아오셨습니다. 부족하지만 저 역시 그렇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러니 저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면 좀 풀렸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사실 오늘 건축위원을 발표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당회원 전원이 모여서 뜻을 모으는 것이 좋을 듯하여 당회원 모두가 모일려면 주일 오후에만 가능할 듯 해서 오늘 당회 후 다음 주 발표합니다. 지난 2주 건축위원을 세우는 과정에서 몇몇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좋은 맘으로 대부분 이 과정을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조금씩은 소통이나 제 리더십 스타일로 인한 오해가 있는 듯 하여 설명을 좀 합니다. 부디 열린 맘으로 보시고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1.건축에 있어서 결정된 것은 제3의 방향으로 건축하자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컨테이너인 것이지 확정된 것 아닙니다. 건축위원들이 세워지면 더 고민하고 논의 될 것입니다. 설계가 확정되면 저는 목회자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2. 물론 이 과정에서 제가 오해하게 한 부분이 있음은 인정합니다. 목회자의 말 한마디가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조심하겠지만 여러분들도 단어하나보다는 의중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3. 이슈를 만들려고 한다고요?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이슈보다 도전입니다. 본질 놓치지 않겠습니다.

4. 이럴 때 일수록 우리 모두가 더욱 말을 조심해야 겠습니다. 당사자에게 확인되지 않은 것은 옮기지 말고 확인해 봐주시고요. 대안이 없는 불평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5. 저는 요즘 하나 됨은 추구하되 그렇다고 비겁하지는 말자이 말씀 붙잡고 갑니다.

제목 날짜
836차 평신도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 & 다운공동체교회 미니연수 안내 (11월 15~17일) 2024.03.26
목회칼럼은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단 댓글은 실명(로그인)으로만 쓸수 있습니다. 2020.06.19
7월 24일 칼럼 /위대한 여름을 위하여   2005.07.28
교역자 특새 후기   2008.08.31
목자목녀들 꼭 보시고 문자로 답주세요!   2012.12.05
풍성한 추석 보내십시오 (1)   2006.09.30
헌신대 앞으로 나오십시오   2011.03.25
"'믿는 사람 안 받는다'는 말 사용하지 마세요" (이수관 목사)   2015.09.23
"예수영접모임”이 달라집니다.   2014.03.14
<경건의삶>을 소개합니다. (1)   2012.02.28
<라이즈업 울산>을 소개합니다.   2012.03.15
<청년교회목사 칼럼> 피곤함을 이기는 은혜를 사모하며-동계수련회   2010.02.04
<확신의 삶>을 해야 하는 이유   2012.01.26
"건널 수 없는 강과 비옥한 평야"   2018.04.06
"고난주간"에 시선을 모아주세요!   2011.04.15
"미세스 쏭"을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1)   2009.07.11
"바르게 미칩시다"   2018.01.20
"아듀(Adieu)" 무거동 시대! (1)   2017.07.22
1.2부 예배의 균형을 위한 당부   2019.09.21
10년을 잘 마감하고 앞으로 10년을 위하여   2013.12.14
10월 15일 CGV 영화관에서 갖는 추수감사절 VIP 초청 주일 못 올 이유가 없습니다!   2017.09.30
10월 2일 칼럼 “33절의 주인공이 되자” (1)   2005.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