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목회서신 5: 앞으로 10년, 부르심에 대한 모험의 여정을 향하여
목회서신 5
앞으로 10년, 온 세대가 주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을 경험하며 가길 꿈꾸며!
(글 시작: 2014.8.31.)
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담임목사로서 10년 목회가 마무리 되어 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감사와 은혜가 더 많은 10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느끼든, 못 느끼든 우리는 어쩌면, 제2의 개척과 같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일로 저는 담임목사로서 청빙을 받고 고민하던 시간만큼은 아니어도, 지난 몇 달을 힘든 시간 가운데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여러분들에게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고민 한 것을 부족하나마 정리해서 나누어야 할 때가 온 듯 합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 인간에게 완벽한 소통은 없음을 알지만, 그나마 말보다는 글이 좀 더 의사전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이 글을 씁니다.
1. 생각지도 않은 은혜
제가 다운공동체 교회의 부름을 받은 것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2003년 초로 여겨집니다. 목사에 대한 정체성, 교회의 본질, 목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고 공부를 하던 중, 어느 날 담임목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고 담임목사로 헌신을 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500명 이상의 대전 이북 지역에서 불러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메일을 열었을 때, 저를 담임목사로 부른 교회는 장년 70-80명(전체120-130여명) 정도 모이는 대전 이남의 다운교회 였습니다. 3대 담임목사로 당회가 결정하였으니 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2대 담임목사님의 메일이었습니다. 그 메일을 본 순간, 든 생각은 조금은 절망에 가까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아 이것이었구나. 내 20대에 마치 야곱처럼 돈을 벌면서 군대 생활을 하기 위해 찾아간 울산을 그렇게 떠나지 못하게 하신 이유가!”
분명 머리로는 하나님 뜻 같은데 가슴으로는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순종은 머리로 이해되는 것을 가슴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처음 해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저에게는 마치 독배 같았습니다. 그 독배를 피하고자 한 달 가까운 시간을 캐나다 교회 카펫 위에서 참 많이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눈물과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가슴도 순종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당시 4명의 멘토 모두가 말씀한 ‘가야한다’는 말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왔습니다.
2004년 12월, 저의 담임청빙결정을 위한 공동의회를 앞두고 교인들 앞에서 소위 목회방향에 대해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하기 싫은 결혼식 서약문을 읽듯, 힘들고 무례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앞으로 이런 목회를 하겠다고 달랑 종이 한 장에 적은 목회 계획을 읽던 한 불쌍한 목사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때였는지, 아니면, 이후 부임 설교 시간 때였는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제가 했던 교회의 미래에 대해 기억하는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 25-30년 정도 목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달에 1명, 일 년에 10명 정도만 전도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은퇴 할 때 장년 300명 교인이 출석하는 교회가 되면, 은퇴하면서 퇴직금 받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겠다 생각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윤충걸 장로님이 1년은 12달인데, 왜 10명이냐고 물으셔서,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는 전도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던 기억이 분명합니다. 그 만큼 저는 부흥과 성장에 대한 자신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풀타임으로 부목사 생활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장년 목회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예민하고, 두렵고 치열한 모습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동안, 그 30년에 걸쳐서도 이루어질지 몰랐던 소망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2014년 9월 현재 장년 평균 출석 300여명, 교회학교 150여명 해서 전체교인 450-500명 규모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분명한 방향과 가치를 가진 교회, 그 가치에 대한 헌신이 있는 교회, 그리고 밝고 건강함까지 더해 졌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저는 고백합니다.
2. 감사와 고민, 그리고 사과
2011년 여름, 6년 조금 더 지난 사역을 뒤로 하고 안식년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마음은 감사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교회에 제가 필요해서 이 교회를 바꾸라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만이었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부족한 저를 예수님 닮게 하기 위해서 이 교회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다운 공동체가 아니면, 어떤 교회 교인이 저 같은 사람을 용납하고 따라 올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을 강하게 주셨습니다. 그 날이 어쩌면 제 마음에서 교회에 대한 열등감이 사라진 날이 아니었나 생각을 합니다. 그 날 이후, 오늘날까지 다운공동체가 제게는 가장 큰 자랑입니다. 어떤 교회와도 바꾸고 싶지 않은 교회 말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다운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식년을 보내면서, 저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돌아가서 얼마 있지 않으면, 곧 300명이 넘는 교인이 될텐데, 이 생각지도 않은 은혜와 축복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는 이유가 있을텐데, 저는 그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나마 당시의 한국교회 상황과 제가 평상시에 분노하고 고민하던 생각을 담아서 생각을 정리한 것이 2012년 3월에 쓴 “안식년 소고: 다운공동체교회의 성장원인분석 및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소고 53페이지에서부터 55페이지에 걸쳐 저는 가정교회의 시작이 리더십이라면, 가정교회의 마무리는 교회 분립임을 주장하였습니다. 아울러 이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교회 분립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와, 이론적인 근거를 찾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이렇게 맺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다운공동체교회가 계속해서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음 회기에서 반드시 교회 분립이라는 축복을 결단하고 누려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가장 확실하게 기여하는 것이라고 본다.”
저는 지금도 원칙적으로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교회가 분명히 그리스도의 몸이고, 유기적인 생명력을 가진 공동체라면, 모든 따뜻한 피가 도는 생명체가 그러하듯, 일정한 수준까지 성장했다가 번식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섭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자리에서 이번 회기, 즉 앞으로 10년 안에는 이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이런 저희 목회관을 좋아하고 함께 해 주신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혹시 그런 분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사과를 드립니다.
3. 주님의 소원과 다음세대
목회를 하면서 깨닫는 분명한 것 중의 하나는 주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지나고 나서 우리는 그것이 주님의 뜻이었구나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개인의 야망이나 비전일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이라고 믿고 최선을 다하되, 그럼에도 일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안식년 소고’를 썼을 때, 과분한 관심과 격려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교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던 문제를 건드린 부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 말하고 싶었고, 뒤에서만 말하던 문제를 논리적으로 정리한 부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러한 반응에 고무되어 저 자신도 마음 한켠에서는 우쭐한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격려와 환호 속에서 작은 부담이 보였습니다. 도대체, 이러한 주장의 기준이 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기도하고 연구하고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밝혔듯이 그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한국교회의 상황이었습니다. 대형교회가 주는 부작용과 특히 대형 예배당 건축 등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인 부담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제 자신의 경험이었습니다. 그 경험 역시 건강한 경험이라기보다는 교회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 그리고 개인적인 열등감을 극복해보고 싶은 마음도 포함되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 즈음, 제게 전해진 하나님의 마음은 누구를 위한 분립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위한 분립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분립을 한다면, 그 때와 기준은 하나님과 지금까지 지켜온 다운공동체의 가치에 따라서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적어도 때와 기준은 상황이나 개인적인 경험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렇게는 물어봐야 합니다. (1)지금 교회 분립이 우리의 가치인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데 도움이 되는가? (2)지금 교회 분립이 우리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닮아 가는데 도움이 되는가? (3)지금 교회 분립이 지역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데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답에서 적어도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적극적인 “예”는 아니어도, 아쉬운 대로 동의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 우리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닮아 가는 데 도움이 되는가? 라는 질문에는 결코 예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웃에게 전도하는 사명만큼이나 동일하게 중요한 사명이 있다면, 자녀들에게 믿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담임목사로 헌신한 첫 번째 이유는 사실, 청소년 사역을 더 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을 건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 때문에 유학을 갔고, 그 질문 때문에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답은 단순했습니다.
어른들의 믿음을 보고 배우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존경받을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아지면 아이들의 믿음은 당연히 보고 자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청소년 사역자의 운명은 담임목사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었습니다. 예산에 대한 영향력은 전무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담임목사가 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대가 함께 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 윗세대의 믿음이 아래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그것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문득 돌아보니, 어른들이 좋아하는 교회는 되었는데, 우리 아이들의 현실은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지난 10년 어른들에게 쏟은 열정에 비하면 그들은 분명 소외되어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앞으로 10년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어른들이 희생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4.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
대부분의 경우 성장에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부임했을 때는 하루 정도 심방하면 꼭 심방해야 할 곳을 다 돌았습니다. 장례도 거의 없었고, 아픈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일들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처음엔 공간도 남아서, 예배당에 테이블을 놓고 세미나실처럼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종종 의자를 더 배치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주차 문제는 공식적으로 우리교회는 9대의 주차만 가능합니다. 주일이면 2-3바퀴 주변을 돌아야만 주차를 합니다.
교육관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지만, 사실 교육공간이라고 말할만한 공간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없습니다. 또한 교역자들의 처우나 사택 등에 대해서도 형편에 맞추어서 최선을 다해오고 있지만 그들의 열정에 비하면 미안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데도 참 행복하게 잘 온 것은 환경보다는 분명 정신과 마음입니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다행히 작년 추수감사절부터 올 부활절까지 모은 헌금으로 부교역자 사택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은 적어도 한 가지는 해결한 것 같아 위로가 됩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2008년 6월에 교회 증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후 우리는 지금까지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지역의 법적인 한계상황이지만, 결국 저의 부족한 리더십으로 불법증축이라는 오명과 그에 따른 책임으로 지금까지 강제 이행금을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정직에 도전하는 공동체’라는 표어를 가진 교회가 말입니다.
지난 6년 동안 이 부분을 생각하면,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현 행법 상, 어떤 경우도 3필지(약200평) 이상의 대지에 하나의 건물을 지을 수가 없음을 이유로 자신을 합리화 하면서, 선교한다는 심정으로 견디며 왔지만, 그 고통과 자괴감은 지금까지도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적어도 앞으로 10년 안에는 분립을 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문제를 풀어 가면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때에 직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제가 우리는 지금 제2의 개척과 같은 기로에 서 있다고 말씀드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개척은 두 가정에 의해 시작되었다면, 이번 개척은 우리 모두의 개척이고, 공동체적 개척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5. 앞으로 10년의 세 가지 소망
2014년 5월31일, 교회 설립 24주년과 함께 3기 당회가 출범했습니다. 이미 2014년 6월 20일자 칼럼에서 밝힌 것처럼, 3기 당회는 지난 10년을 바탕으로 하여, 동일한 사명과 표어 아래, 앞으로 10년은 좀 더 구체적으로 4대 목회 방향(신약교회회복, 세대통합, 직장사역, 지역복지)을 세 가지 진술로 정리하여 집중하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그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4대 목회방향의 3가지 진술
1) 목장(가정교회)을 통한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성경적인 교회(신약교회회복)
2) 자신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하는 자녀세대 양육(세대통합:교회학교부흥,믿음의가문)
3) 섬김과 순종을 통한 지역교회와 사회의 변화에 기여하는 교회(직장사역, 지역복지)
아울러 다시 한번 초심을 기억하기 위해 사명선언문과 표어를 적어 봅니다.
사명선언문: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아 세대를 통합하고 일터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공동체
표어: 괜찮은 이웃, 정직에 도전하는 공동체,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교회
말은 멋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고 도전입니다. 그래도 이 도전은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6. 다음세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희생
우리의 마음속에는 늘 다음세대에 대한 부담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 풍조를 생각하면, 더욱 그 부담은 커져 갑니다. 그렇다고 나 혼자 잘한다고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하고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확신합니다.
한국교회 중에서 다음 세대를 걱정하지 않는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로 들어가면, 그들을 위한 배려는 언제나 차선으로 밀려납니다. 교회를 염려하는 미래학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앞으로 20-30년 안에 한국교회는 절반 이하로 교인수가 격감할 것이며, 특히, 교회 학교는 유럽처럼 아예 존재 하지 않을 가능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미 교회학교의 붕괴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요한 시점에서 앞으로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희생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그 몸부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고 개혁적이고 창의적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른들이 불편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만큼 절박한 것이 다음세대 사역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감당해야 할 세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1)예수님처럼 사는 존경받은 어른이 되는 것
이 글을 쓰는 중에, 김제동이라는 유명한 방송인이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영세를 받는 일은 자유지만, 제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그가 늘 방송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권사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했고, 아들을 위해서 새벽마다 기도하는 어머니였다는 것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만으로는 아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에는 부족했던 것일까요? 저는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아들의 성공은 가져다주었지만, 아들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갈 삶의 모델과 존경과 자부심을 주지는 못했다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는 원인이 많겠지만, 그 중심에는 부모님들의 삶이 있습니다. 세상의 믿지 않는 부모들과 주일날 교회 가고 십일조 하는 것 말고는 어떤 매력도 주지 못하는 삶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 기성세대가 감당해야 할 것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존경받는 믿음의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자녀들이 그 삶을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2)전문사역자들을 준비시켜 주는 것
지금까지도 한국교회에서 고쳐지지 않는 교역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교역자는 담임목사가 되는 수련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신학을 하고 사역자가 된다는 말은 모두가 담임목사로 부름 받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닐 것입니다. 평생을 어린이 사역자로, 청소년 사역자로 부름을 받는 사람도 있어야 성경적일 것입니다.
그만큼은 아니어도 최소한 한 사역을 맡으면 10년 정도는 가봐야 전문성도 생기고 열매도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평균 한국에서의 부교역자의 임기는 2-3년이 안됩니다. 이렇게 해서는 본인을 위한 사역의 전문성확보다 또 사역 현장의 열매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역자만도 나무랄 수 없는 것이, 그 이면에는 사역자들을 훈련시켜주고 처우를 개선해주는 것이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본인을 성장시켜주고 사역에 방해받지 않을 정도로 생활을 보장해 준다면, 그래도 많은 교역자들은 장기 사역에 헌신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다.
3)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
마지막으로, 우리는 좀 더 자녀들이 믿음에 반응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제공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래도 다른 교회보다는 좀 더 도전적인 사역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없는 형편에서 쥐어 짜내는 듯한 심정으로 일구어 온 것들이었습니다. 좀 일관성 있고 계획성 있고 시대를 뛰어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미안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야 말로 우리 어른들이 희생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청교도들과 또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교회와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당신들은 굶더라도 학교와 교회를 세웠습니다. 과거에는 예배당에 가면 집에 없는 것이 있었고, 예배당에 있는 물건들이 거의 집에 있는 것들보다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교회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는 예배당보다 집이 더 좋습니다. ^^; 이제 다시 한번 예배당과 집이 비슷하다는 느낌, 또는 집에 없는 것이 예배당에 가면 있어서 예배당에 가고 싶은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7. 당회의 결정
최근 우리 교회 당회는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앞에 두고 많은 회의와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결정한 것은 세 가지 였습니다.
1) “준비와 하나됨”을 위해서 뜻을 모은다.
2) 2-5년 정도 시간을 두고 초 긴축재정을 통해 재정을 준비한다.
3) 어떤 예배당을 지을 것인가 소위원회를 통해 의견을 모은다.
준비라 함은 긴축재정을 통한 물질적인 준비와 교인들 역시 가정경제에서 미리 헌금을 준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다음 세대에게 맞는 예배당이 어떤 예배당이어야 할지를 생각하고 찾고 준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된 마음으로 이 일을 감당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가까운 주변에 종교부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종교부지에 대해서는 장로님들 전원과 건축전문가들 까지도 만족해 했습니다. 종교부지가 중요한 이유는 시세가 일반 부지보다 50%가 싸다는 것과 종교부지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시설을 짓는 과정에서 민원이 발생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그 땅을 주시든지 아니면, 새로운 땅을 주실 것이라고 믿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목자목녀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고, 공동의회를 열어서 교인들에게 설명하기 당회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8. 변수 그리고 결정권을 하나님께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 땅을 이단이 계약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지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루를 꼬박 보내었습니다. 최근 이단이 세운 건물 앞에도 가 보았습니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이단으로 무너진 교회와 가정, 개인들에 대한 사례도 보았습니다.
8월 마지막 주일에는 탁지일 교수를 모시고 이단 세미나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든 이단을 다 막을 수는 없지만, 이런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 이단 문제를 개입시키는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장로님들을 모으고, 많은 논의 끝에 공동체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이 안건에 대해서는 교인들의 투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당회에서 정리된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1)공동의회 전, 8월 31일 10시 10분 총목자모임을 통해 설명하기로 하다.
2)8월31일 12시 10분 공동의회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9월14일 투표가 있음을 알리기로 하다
3)9월14일 공동의회를 통해 3분의 2상 찬성하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계약하기로 하다.
4)투표자격은 싱글목장, 장년목장소속의 6개월 이상 된 세례교인
5)공동의회에서 공정함을 위해 재정에 대한 부담과 책임에 대해서 준비해서 알리기로 하다
사실 이 과정 중에서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에 집주인을 만났습니다. 정황을 확인하고 간절하게 기회를 한번 주실 것을 부탁했지만, 주인을 기다려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입장에서는 이단이든 정통이든 그 분에게는 중요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했을 때, 추석을 앞두고 한통의 카톡을 받았습니다.
“박종국 목사님 우리 민족 최대명절 추석이네요 풍성한 한가위 명절 되시길 소망합니다. 교회 이전 문제로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으시겠죠. 저 또한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나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앞서군요. 또 목사님의 진정한 마음과 바램이 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목사님이 약속한데로 15일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목사님의 뜻하는 바되로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김 ** 드림”
적어도 기회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9. 믿음, 희생, 책임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헨리 블랙가비는 클로드 킹과 공동으로 지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책에서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고린도전서 1장 10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교회는 모든 지체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조언을 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는 모든 교회의 제반 상황에 대해 교인들의 의견을 물을 수도 물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지도자들을 세우시지도 않으셔야겠지요? 그러나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우리 한명 한 명 안에 있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모아서 하나님의 싸인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저는 우리가 정말 기도하고 내 경험이나 상처나 세상적인 기준이 아닌, 그 모든 것을 잘 살핀 뒤에, 기도하고 믿음과 희생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결정한다면 그것이 모인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무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조금 잘못된 결정이라도 그런 하나된 마음으로 결정된 일이라면 우리 주님께서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이번이 아니어도, 우리는 적어도 5년 안에는 예배당을 지어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할 것인가 조금 뒤에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배당을 지어 본 선배목사님들은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게 있었습니다.
“예배당 건축은 한계 상황을 뛰어 넘는 희생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10. 9월 14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시간!
2004년 당시 다운교회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던 적이 있습니다. 3대 담임목사인 저를 두고 담임목사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선택을 앞둔 교우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 앞에 중요한 순간에 서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주목하고 있고 하나님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고 있는 자리입니다. 믿음을 따라 양심을 따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10년이 지난 오늘 저는 동일하게 말씀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한 말씀 덧붙이자면,
‘이번 선택은 담임목사 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다운공동체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고 여러분들의 믿음과 희생과 책임을 드리는 선택 입니다.
물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결정이 어떤 결정이든 그것은 둘 다 우리가 선택한 우리 다운공동체의 미래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장12절)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출14:14)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글 마무리: 2014년 9월 12일 다운공동체교회 담임목사 박종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