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옳은 일은 나중이 없습니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이제하 시, 이제하 곡)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화가인 76세의 이제하 선생이 60에 자신의 시에 곡을 붙여 발표한 노래입니다. 원 제목은 ‘김영랑, 조두남, 모란, 동백’인데, 후에 조영남씨가 ‘모란동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장례식에서 불러주었으면 하는 맘으로 리메이커 하여 최근에 종종 불려지곤 하는 노래입니다. 새벽에 선잠에 깨어 계속해서 불러보지만, 노래는 좋은데 마음은 아니올시다!
명절 끝에 생뚱맞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칫 노래처럼 한 분이 가신 것 같지만, 노래처럼 가시지 않은 한 분 생각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7년 가까운 시간을 한결같은 신앙의 본을 보이시던 안식원집사님께서 1월30일 천국에 가셨습니다. 믿음이 있었기에 입관예배에서 정정교전도사가 불렀던 찬양처럼 힘차게 가셨습니다. 찬양을 다시 불러보니 곡조는 유행가에 못미치지만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이렇듯 신앙 없는 인생과 신앙 있는 인생은 시작은 비슷해 보이나 끝이 다릅니다.
광야에 찬 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산 넘어 눈보라 세차게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찬송가 479장)
장례를 치르면서,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또 안식원 집사님이 신앙으로 돌아오시도록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윤충걸 장로님의 눈물 섞긴 고백이 생각납니다. 요양원에 가셨다는 말을 듣고 설 지나고 가봐야지 했는데,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고 하시시면, ‘옳은 일은 마음에 생각나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데...나중에 없는데...’라는 말씀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교인 수가 늘어가고, 그렇지 않더라도 시간이 가면서 사역이 눈에 보여서, 일의 양이나 헌신의 정도가 예측되면 종종 입에 붙는 소리가 있습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이 상황에서는 할 수가 없어요. 다음 번에 잘 준비해서...” 결국 이렇다보면 사역의 기준은 동기나 옳기 때문이 아니라 해낼 수 있는지 없는지가 기준이 되고, 얼마나 쉽게 갈지가 결정의 기준이 됩니다. 더 나아가 동기보다는 결과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안집사님을 보내면서 이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결과가 나쁘더라도 옳은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설립기념주일이 2월9일 주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2일)주일이 연휴 끝이라서 많은 분들이 타지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하면 광고할 시간이 없어 걱정이 됩니다만, 최선을 다해서 알려봅니다. 여러분들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참 잘한 일 중의 하나는 절기 예배 때는 전세대가 연합으로 오전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몇 년 전부터 자꾸 상황을 핑계삼아 나중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연합으로 드리다보니 장소도 좁고 집중력도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1년에 한번 집중력은 좀 떨어지고 소란스러워도 함께 모인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수요일 저녁 교역자들이 모여서, 이번에 다시 그 정신을 살려보기로 했습니다. 시간은 오전11시입니다.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좀 더 다듬어야겠지만, 영아부부터 어린이팀까지는 담당교역자들의 안내를 할 것입니다. 각 부서별로 최대한 세대통합을 살리면서 또한 연령에 맞는 주일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관련부서와 여러분들도 조금씩 양보하여 나중이 아닌 지금 옳다면 그림을 함께 만들어 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