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금식도 결국 우리를 위한 배려였습니다.
최근에 “끼니반란”이라는 모 방송국의 스페셜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주로 나온 내용은 ‘1인 1식’, ‘간헐적 단식’ 등을 다루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공복이 우리의 건강에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은 아침, 점심, 저녁을 규칙적으로 챙겨 먹는 것은 건강의 황금 법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서구에서는 IF(Intermittent Fasting:간헐적 단식)라는 새로운 식생활 패턴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16~24시간 정도의 배고픈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순히 살을 빼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조금의 식습관 변화로 당뇨병, 치매, 암을 예방하고, 수명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공복력(空腹力)’에서 찾고 있습니다. 방송에 따르면, 배가 고플 때, 우리 몸속에서는 장수 유전자라고 불리는 시르투인(Sirtuin)이 활성화 되고, IGF-1 호르몬이 감소하여 손상된 세포를 치유하는 시스템이 가동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몸을 일정시간 굶주린 상태로 만듦으로써 노화의 속도를 늦추고, 각종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인류가 세 끼를 먹기 시작한 것은 불과 백 년 남짓 정도 된다고 합니다. 산업혁명 이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한두 끼만으로도 족하게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하루 세끼의 정해진 식사는 일부 인류에게 최근에야 주어진 특권입니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그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오히려 현대병이라는 이름으로 건강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우리 대부분에게 해당되는 현실입니다^^;
저는 이 방송을 보면서, 기독교의 오랜 전통인 금식을 생각했습니다. 성경에는 모세, 엘리야. 다니엘, 다윗 그리고 예수님과 사도들에게 이르기까지 다양한 금식의 동기와 방법 등이 나옵니다. 아울러 성경은 금식의 의미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야 58장 6-7절 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고리대금의 결박을 풀어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종의 멍에를 풀어주는 것)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억눌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는 것(다른 사람들을 묶고 있는 일체의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결국, 금식을 통해서 나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내 중심의 삶을 죽이고 타인 중심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욕심에서 오는 가난이 아닌 절제가 주는 부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으로 볼 때, 금식은 신앙에 있어서 정신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 방송을 보면서, 이것은 육체적으로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큰 배려였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우리를 향한 고난, 십자가, 죽음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늘 해오듯이 미디어, 스마트 폰, 애니 팡, 절제도 좋습니다. 그와 더불어 어떤 식으로든지 금식에 함께 동참해 보길 부탁드립니다. 일주간 완전금식만이 금식은 아닙니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금식도 좋고, 한 주간 매 한끼 금식(매일저녁, 또는 매일 점심)도 좋습니다. 고난의 본래 의미도 생각하시고, 육체적으로 우리를 배려하신 주님의 사랑도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번 금식을 기점으로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24시간 금식을 생활화 해볼까 선언을 해 봅니다. 참고로, 금식에 해당하는 만큼의 금액은 먹는 문제로 고통당하는 분들을 돕는 단체에 보내 질 것입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먹는 것의 4분의 1만으로 살아간다. 나머지 4분의 3으로 의사가 살아간다. - 이집트 피라미드에 새겨진 비문(기원전 38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