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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다운공동체가 23살이 되었습니다. 흔히 교회의 나이를 사람의 나이에 빗대어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청년입니다. 청년은 열정입니다. 좌충우돌 할 수도 있고 실패가 용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청년의 이미지로 우리 공동체의 스물셋이라는 나이가 비유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만약 그렇게 되어 버린다면, 우리 교회가 육칠십주년이 되면 벌써 노화 현상이 올수도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의 역사가 쌓여가는 것을 부인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말씀에 예민하여 우리 이름처럼, 교회다운교회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약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제자도, 공동체성, 선교(전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 말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23살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아래의 글을 만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긴장이 있는 성숙”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래 글은 최영기 목사님이 최근 가사원에 올린 칼럼입니다. 몇 번을 읽어도 가슴에 와 닿는 글입니다. 또 지금 우리교회에 필요한 덕목입니다. 일부를 인용합니다.(전문은 가사원 홈페이지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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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성숙’을 ‘애매함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ability to live with ambiguity). 맞습니다. 우리가 나이가 어리든지 미숙할 때에는 흑백 논리에 지배를 받습니다. 옳든지 그르든지, 맞든지 틀리든지, 둘 중의 하나라야 합니다. 이러한 흑백 논리에는 애매함과 불확실성이 배제되었기 때문에 갈등이 없고 심리적으로 편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견이든지 한 쪽이 절대적으로 맞고 다른 쪽은 절대적으로 틀리는 경우는 적습니다. 보통은 양 쪽 다 일리가 있습니다. 모든 일에 양면이 있는 법인데, 흑백 논리에 빠져서 한쪽만 보고 다른 쪽을 무시할 때에 어려움과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경륜이 쌓이면서 양쪽을 다 보게 되고, 양쪽 다 일리가 있다는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럴 때 맛보게 되는 것이 심리적인 긴장감(tension)입니다. 상충되어 보이는 두 가지 입장을 동시에 수용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 사역에도 이러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즈음 토의가 되고 있는 교회 본질 회복과 교회 성장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이 이러한 것입니다. 이것 외에도 가정교회 사역 도처에서 긴장감은 발견됩니다. 이러한 긴장감을 못 견뎌하는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정교회 매뉴얼을 요구하지만, 이런 매뉴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문제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긴장감이 존재하는 분야 중의 하나가 위임입니다. 가정교회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을 신뢰하고 과감하게 목양권을 위임해 주어야합니다. 이럴 때 평신도 목회자라는 자부심이 생기고 주도권을 쥐고 목양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서둘러서 위임하면 방치가 됩니다. 스스로 설만한 준비가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위임을 했다가, 목자가 실패를 맛보고 목장 사역을 그만 두는 것을 종종 봅니다.


 


얼마만큼이 위임이고, 얼마만큼이 방치인가? 이 경계선은 목자의 자질과,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여기에 매뉴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담임 목사가 스스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긴장감은 양육에도 존재합니다. VIP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아니하고 계속 섬겨주기만 하면 이들은 영적인 어린이로 머물게 됩니다. 제자를 만들라는 예수님의 대사명에 위배됩니다. 그러나 이들을 지나치게 푸시하면, 낙망해서 주저앉거나 압박감을 느껴 교회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긴장감이 생깁니다.


 


얼마만큼 기다려주고, 얼마만큼 푸시 하느냐? 여기에도 매뉴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긴장감은 원칙과 융통성 사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가정 교회로 전환하는 목회자들 가운데에는 지나치게 융통성을 발휘하여 교회 실정에 맞춘다고 가정교회 원칙을 변형시켜 가정교회 정착을 어렵게 만들고 마침내는 소그룹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어떤 목회자들은 반대로 가정교회 관행을 지나치게 고집하여 성도들에게 필요 없는 거부감을 심어주어 가정교회 정착을 좌초시키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면 성가대나 남녀 선교회를 없애는 것이 가정교회 원칙이 아닌데도 이들을 성급하게 폐지시켜 교인들의 반발을 사고 가정교회를 거부하게끔 만듭니다.


 


관행 뒤에 있는 원칙을 발견하여 원칙을 굽히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융통성을 발휘해야하는데, 여기에 긴장감이 따릅니다. 원칙 고수냐, 현실 수용이냐? 두 선택 사이에서 적절한 해법을 발견해 가는 것이 담임 목사의 지혜입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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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다운 가족 여러분!


우리에게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전혀 ‘애매함을 수용 못해서 지나치게 긴장하는 분’과 ‘너무 수용해서 긴장이라고는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겐 이 중간에서 지혜를 구하는 23살의 성숙한 청년이 필요합니다. 저도 늘 그 지혜를 구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여러분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신약교회의 회복을 꿈꾸는 우리교회는 ‘목사처럼 사는 평신도, 평신도처럼 사는 목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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