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비가와도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작년부터 우리교회 집사님 한분이 가훈을 표주박에 새겨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가훈이 담긴 표주박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제가 아직 가훈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장식용이 아니라 적어도 저와 아내가 평생, 그리고 우리 세 아이들이 그들의 가정을 이루어 자신들의 가훈을 정하기 전까지는 맘에 새기고 싶은 가훈을 이번에 정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청소년 집회를 마치면서 몇 가지 생각하던 것 중에 한 가지는 분명히 정했습니다. 그것은 “약속”입니다. 약속은 반드시 넣을 생각입니다.
오늘 청소년 집회 첫날입니다. 방금 마쳤습니다. 그런데 필립전도사 얼굴이 식사 때부터 어두웠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분명 부모들이나 어른들 중에서 오겠다고 약속한 분이 35명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분들이 오지 않아서 식사도 남고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들 이름을 묻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서로가 맘 상할 일입니다.
이해합니다. 분명 어떤 분들은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오지 못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몸이 갑자기 아프시거나 가족 가운데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통사고라든가 손님이 갑자기 방문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까지 어떻게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이런 경우도 가능한 사정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오늘 오후부터 내린 비 때문이라면, 그래서 여러분 안에 있는 게으름 이 발동해서 오지 않으셨다면 저는 진지하게 한번 우리의 약속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약속! 작은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이 지켜지지 않는 순간 우리교회도 “많은 교회 중의 하나”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는 우리교회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교회 중의 비슷비슷한 또 하나의 교회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면 저는 그런 교회는 그만 생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최근 교인들이 늘어나는 만큼이나 제 부담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 중의 하나의 교회” 의 특징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특징이 주일 예배 때 숫자와 그 외의 예배나 집회, 예를 들면, 수요예배나 새벽기도회와의 숫자의 간격이 점점 커진다는 것입니다. 소위 선데이 크리스천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 “그들만의 리그”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주일학교 와 청소년 사역입니다. 성경적인 자녀교육은 자녀가 있는 곳에 부모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없이 우리의 자녀들과 교사들만이 그들만의 리그를 치르고 있습니다. 소위 관중도 없이 말입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북미의 교회교육이 무너졌습니다.
교회는 자녀들을 대신 돌봐주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믿음의 자녀들을 만들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 곳입니다. 굳이 돌봐야 한다면 아직 부모가 믿지 않는 자녀들이거나 경제적인 문제로 자녀들을 돌볼 수 없는 가정의 자녀들, 또는 가정적인 이유로 부모가 함께 하지 않는 자녀들일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성경의 정신이고 다운교회 교육정신입니다.
다운교회오고 직장생활하면서 약속과 반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