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08년 나의 감사!
“저는 강원도 태백, 사북 지역에서 사형제 가운데 세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큰형님의 이름은 일종이, 둘째 형님의 이름은 이종이, 제가 세 번째로 태어나서 삼종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그럼 제 동생의 이름은 사종이냐구요? 한국 사람은 4자를 싫어하기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제 동생이 큰 인물이 되라는 뜻에서 대종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산간벽지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후 청운의 푸른 꿈을 품고 서울로 공부하러 가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서울에 있는 학교는 못가고 인천 기계공고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저의 꿈은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직장을 갖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었습니다.”(심상종형제의 글, 전문은 다운교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내일 우리교회에 올 심상종 형제를 처음 만난 2002년 봄, 그가 그때 연주 했던 찬송가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의 섹소폰 연주를 듣고 있습니다. 저의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유익할 때도 있군요. 자료를 찾다보니 그때 밴쿠버 유스 코스타(유학생을 위한 집회이름) 씨디자료가 남아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10월 마지막 주일은 우리교회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복된 날입니다. 지난 3년 추수감사절은 참 행복한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은 공동체였지만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려고 했던 몸짓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올해는 늘 이용하던 공터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교회 옆 거리와 공원에서 축제를 갖습니다.
감사절을 하루 앞둔 이 아침에 내가 올해 감사할 것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많은 감사가 있습니다. 목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그러나 최고의 감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더 생생하게 믿어지는 것입니다. 앞서, 심상종 형제를 6년 만에 만납니다. 그 만남을 반추해보면서 한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6년 전, 심상종 형제는 막 알려지기 시작한 연주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아직 공부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단계였습니다. 그러나 돈은 없는...
그런데 그가 이제 그 6년을 잘 훈련받고 공부를 마치고 약속한 대로(당시, 제가 어디서든 목회를 하면 교회 규모에 관계없이 한번 와주기로 했었습니다) 더 건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강원도 촌놈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빚어 가셨습니다. 저 역시 그때는 미래가 불안한 유학생이었습니다. 목회에 대한 두려움으로 늘 괴로워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밴쿠버 하늘은 왜 그렇게 파랗든지..그리고 그 아래 있던 저희 가족은 또 왜 그렇게 초라했는지...그러나 하나님께서 지난 6년을 함께 해주셔서 오늘 이런 아름답고 행복한 목회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하나님을 더 의지합니다.
무엇보다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과 인생도 그렇게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바라기는 그 하나님을 더욱더 붙잡는 우리 교우들 되시길 이 감사절 아침에 부탁드립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도 불평을 시작하면 그것에도 ......
진짜 맛을 한번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