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장년 자유게시판
(싱장칼럼) '그들만의' 부흥회?
점점 힘을 잃고 꺼져가며 쇠잔하던 사람들이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것을 부흥이라 일컫습니다. 4/25(목)~4/27(토)에 걸쳐 부흥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흥에 관해 다시 사모하게됩니다. 우리나라 교회사연구 특히 한국기독교회사에서 한 획을 긋는 박용규 교수님께로부터 저는 다음과 같이 배웠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와 마찬가지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 교회에서도 1903년 원산부흥에서 또 1907년에는 평양대부흥 같은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부흥을 통해 한국교회가 양적으로는 물론이고 질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되는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서 1740년대 미국에서 거대한 부흥을 일으키는 통로가 된 조나단 에드워즈는 부흥은 ‘결코 인간적인 어떤 노력으로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성을 발했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각성이나 부흥은 예수님의 몸된 교회에서 성령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흥은 하나님의 주도적이고 주권적이고 절대적인 은혜의 역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은 기지의 사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바로 그 성령 하나님의 주도적이고 주권적인 역사가 아무곳에서나 임하는 것은 아니었다라고 학자들은 경험적 견해를 같이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주도적이고 주권적인 은혜의 역사는, 철저한 회개와 통회가운데 특별히 간절하게 사모하는 곳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부흥의 역사는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 전해진 말씀을 깨달은 후에 간구하는 기도, 그리고 부어주신 성령의 임재로 인해 거대한 변화가 야기되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편 부흥이 진행될수록, 영적으로 각성하게 되고. 그래서 우리들의 죄성과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기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몇가지 연쇄반응이 일어납니다. 다시말해 국운이 쇠한 일제강점기 상황이 조성되고 있음에도 제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게 되고,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삼으려는 구령의 열정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라고 봅니다.
2013년 아직 서늘한 봄에 우리 싱글장년은 이경준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갖습니다. 목장모임을 대체하면서까지 이 부흥회를 사모합니다. ‘나의’ 부흥회는 온데간데 없이 ‘그들만의’ 부흥회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앞 다투어 참석하기를 축복합니다. 이글이 인쇄되는 주일부터 그 부흥회의 자연스런 열매들이 거둬지기를 기대하며 ‘나의’ 부흥회와 ‘우리들의’ 부흥회를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