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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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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생물학
여왕개미는 사회의 기본규범을 세울 뿐 현장에서 직접 진두지휘를 하진 않는다. 여왕개미가 분비하는 강력한 화학물질인 여왕물질은 다같이 암컷으로 태어난 일개미들의 생식기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그들로 하여금 알은 낳지 않고 평생 일만 하도록 만든다. 개미제국의 번식은 오로지 여왕 혼자의 몫이다. 이 같은 번식분업의 사회에서 여왕은 자기에게 주어진 번식의 의무를 다할 뿐 무슨 일을 어떻게 하라고 밑두리콧두리 지시하지 않는다.
여러 마리의 개미들이 큰 먹이를 잡아 끄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 만일 그 여러 마리의 개미들이 제가끔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당긴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일개미들이 큰 먹이를 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면 그 현장에 작업반장과 같은 리더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 개미학자들은 아직 그런 리더 개미를 찾지 못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 못지않게 대규모 전쟁을 하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개미다. 전쟁을 하려면 병졸들도 필요하지만 당연히 전체를 총괄하는 지휘관도 있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전장의 최전선에 서서 “공격하라”와 “퇴각하라”를 외치는 소대장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개미의 전쟁터에는 소대장이 없다. 몇 년 전 전장의 병력을 파악한 다음 후방으로 달려가 병력보강을 요청하는 연락병 개미는 찾았지만 소대장 개미의 존재는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 있다.
잠언 6장에는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는 솔로몬 대왕의 말씀이 적혀 있다. 최첨단 과학분야인 복잡계 연구에서도 벌써 오래 전부터 개미의 이런 속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개미들이 어떻게 지도자도 없이 그 모든 대역사업들을 해낼 수 있는가를 연구해온 복잡계 연구자들의 잠정적인 결론은 너무나 싱겁게도 “각자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브레인’ 또는 ‘사회적 뇌’라고 부르는 시스템 속에서 일개미들 각자가 마치 우리 뇌의 뇌세포들처럼 일종의 네트워크를 이루며 자가조직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